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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나의 기분을 마중 나오는 꽃

Flowers that greet my moods every month

매달 나의 기분을 마중 나오는 꽃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임지선 / 34세

브랜딩 디렉터, 독립 큐레이터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구조 다세대빌라 3층
면적  49.58㎡(15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50만 원

Room History

임지선은 4개월째 꽃 구독을 하고 있다. 그달 그달 마음 가는 꽃을 골라 재조합한다. 6월의 임지선은 귀리와 유니폴라를 골라 책상에 두었다. 그 수수한 푸르름에서 너그러운 계절이 느껴졌다. 매달 특정 시기에 꽃을 고른다는 것, 오늘의 계절과 기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다. 평소와 달리 의외의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내 상태에서 무엇을 환기하고 싶은지 근원을 알 수 있을 터. 현명한 임지선은 스스로 어떻게 회복하는지 잘 알고 있다. 아름다운 꽃을 고르고 초인종 소리를 기다린다. 매월 둘째 주의 풍경이다.



건물에 들어서면서 홍콩 생각이 났어요.
맞아요.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건물이 좀 낡았는데 그래도 넓고 살기 괜찮아요. 2년 전까지 하우스메이트와 살다가 이 집에 오면서 처음 혼자 살게 됐어요. 하우스메이트와 있을 때도 좋았지만, 혼자만의 공간을 갖는 건 또 다른 기분이더라고요. 누군가를 초대하면서 눈치 볼 일도 없고, 조도나 향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제 마음대로 정할 수 있으니 조금 더 안정적이고 편해요.


미술 관련 책이 많네요. 직업이 하나가 아니죠?
원래는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큐레이터로 있다가 지금은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기관 소속이 아닌 이상 수익이 불안정할 것 같아서 퇴사와 동시에 함께 동생과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들었어요. 동생이 건축을 맡고 저는 브랜딩 디렉터로 일해요. 남들에겐 기획자라고 소개하는 편이고요. 2016년에 오픈했으니 벌써 4년이나 됐네요.


이게 어제 온 꽃들인가요?
어제는 아니고 며칠 전에 받은 소재(바탕이 되는 식물)예요. 사이트에 가면 정기 구독도 베이식, 믹스, 스타터로 나뉘어 있는데, 저는 베이식을 선택해서 제가 원하는 것을 몇 가지 골라 조합하는 편이에요. 이번엔 귀리랑 유니폴라를 골라서 이렇게 두었고요.


SNS를 보니 원래도 꽃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전시 공간이나 상업 공간 관련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식물을 빼놓고 넘어간 적이 없어요. 사람이 접하는 공간이기에 아무리 멋지고 좋은 인테리어라 해도 자연 요소가 없으면 죽어가는 공간,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공간처럼 느껴지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공간을 의뢰한 분들도 식물의 존재를 간과하지 않았고요. 그러면서 식물에 관해 공부를 하게 됐어요. 도시에서 잘 자라는 식물, 햇빛을 적게 받아도 잘 사는 식물, 물을 많이 줘야 하는 식물 등 많은 걸 알게 됐죠. 이전보다 훨씬 사고와 취향의 세계가 깊어진 기분이에요. 진부한 말이지만 마음의 평화를 준다는 표현이 맞더라고요.


그런데 생화에 비해 나무가 적은 편이네요?
한국의 1인 가구 자취인이 식물을 키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물을 주고, 햇빛도 쬐게 해주고, 환기도 시켜줘야 하는데, 사실 이미 그러한 환경에 있어야 하는 게 맞아요.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살 수 있겠어요. 남향집 한번 찾기 어려운걸요. 아무래도 나무는 부피가 크니까 차선책처럼 절화 정도를 들이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이유로 나무를 키우지 못하다가 이번에 좀 나은 환경으로 이사 오면서 나무를 들였어요. 흙에서 자라야 할 애들을 집에서 키우자니 신경 쓸 부분이 많지만 또 그만큼 행복해요.


꾸까‧꽃사가‧데일로즈‧두시 등 꽃 정기 구독업체가 여럿 있던데 그중 어니스트 플라워의 꽃을 구독하는 이유가 있나요?
꽃 정기 구독 서비스는 5~6년 전 꾸까를 통해 알게 됐어요. 꾸까 카페에 갈 정도로 관심이 많았는데 정기 구독까진 하지 않았어요. ‘아, 이런 서비스가 있구나’ 정도로 인식했죠. 어니스트 플라워는 이제 4개월째 정기 구독을 받고 있는데 남자 친구가 먼저 신청해준 거예요. 꽃을 사다 주는 것도 좋지만 그때그때 환경과 내 기분에 따라 꽃을 고르고 받을 수 있으니 구체적인 취향을 선물 받는 것 같아서 더 기분 좋더라고요. 그때 처음 구독 서비스가 새로운 선물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와인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으면 퍼플독 같은 와인 구독 서비스를 신청해줘서 자연스럽게 술의 취향을 찾게 해주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스스로 기술과 친하지 않다고 여기는 저도 생각해보면 구독을 꽤 하고 있더라고요. 생리대,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어도비 포토샵 등 거의 자동 결제나 다름없지만 그래도요. 지선 씨의 구독 상황은 어때요?
저도 새삼스레 생각해보니 꽤 있더라고요. 이전엔 웹툰 작가 잇선의 ‘모지리 다이어리’라는 메일로 만화를 받아보는 서비스를 신청했고요, 지금은 ‘총총레터’라는 동시대 미술과 전시 소식을 알려주는 메일링 서비스와 ‘술담화’라는 전통주를 받아보는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어요. 올해 들어 다양한 서비스를 접하며 적극적으로 시도해본 것 같아요.


작년에도 구독 서비스는 존재했는데, 왜 지금에서야 적극적인 소비자가 되었을까요?
예전에는 뭐가 유행이다 싶으면 모두가 좇아가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자신만의 취향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생각해요. 어니스트 플라워가 좋은 이유도 같은 달에 모두가 같은 꽃을 받는 게 아니라, 정기 배송이라는 베이스에 나의 취향을 덧붙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나는 노란 꽃을 좋아해서 항상 받았으면 좋겠어, 화이트 스톡과 옥시페탈룸이 함께 있어야지 우리 집에 어울려, 이런 식으로 취향대로 변화 가능한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게 최근에서야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서비스를 기다렸고, 마침내 발견하면서 사용하게 된 거죠.


저는 어니스트 플라워의 꽃을 받을 때 농부의 이름까지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직도 기억해요. 윤이중 농부님.
맞아요. 농부에 대한 구체적 스토리가 있어서 여타 브랜드와 다르게 느껴졌어요. 항상 저는 제 취향에 깊이가 있기를 바라는데, 작은 스티커 혹은 작은 카드에라도 스토리를 담아 보내주니까 취향이 깊어질 소스가 생긴 것 같았거든요. 인스타그램에 꽃 사진만 떡하니 올리는 것과 어디에서 온 무슨 꽃이라고 쓰는 것은 다르잖아요. 이름도 어니스트! 진실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실 농부 이름을 내걸고 마케팅하는 곳은 많거든요. 이마트에서도 순박한 농부 얼굴이 크게 들어간 광고를 내걸잖아요.
어릴 때 들은 기억에 남은 일화가 있어요. 일본의 사과로 유명한 지역에서 태풍으로 농가의 90% 이상의 사과가 낙과했는데, 한 농장만이 80% 이상의 사과가 낙과하지 않았대요. 그래서 그 농가 주인이 ‘떨어지지 않는 사과’라고 이름을 붙여 홍보했더니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이 죄다 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저에겐 표현 하나가 중요한 거예요. “어디에서 어떻게 자라서‧‧‧ 당신에게 보내려고 키운 꽃입니다”라는 스토리에서 브랜드 이념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사과의 당도가 얼마인지, 얼마나 큰지 등 기능적인 퀄리티를 보는 것보다 이제는 무형의 어떤 것이 나에게 와서 충족과 행복을 주는지 보는 것 같아요. 소비자가 생산물을 바라보는 가치가 달라진 거예요.


따지고 보면 정기 구독은 오래된 사업 모델이에요. 우리 어릴 때 신문이나 우유 구독해서 사은품 받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구독 경제다 뭐다 이슈가 되는 걸까요?

맞아요. 최근에 홈핏 같은 집으로 찾아오는 서비스를 알게 되면서 화장품 방문 판매가 생각났어요. 지금도 저희 할머니가 애용하고 계시는데, 지켜보면 지금의 서비스와 굉장히 비슷한 사이클이거든요. 처음에 방문 판매 아주머니가 오시면 설화수, 헤라, 려 등 다양한 화장품을 보여주다가 점점 고객의 니즈와 피부 상태를 파악하면 큐레이션까지 해줘요. 건성 피부인 경우엔 겨울에 리치한 제품을 챙겨 와서 이런 걸 쓰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추천해주죠. 방문 판매 아주머니의 서비스엔 인간적인 면이 많잖아요. 요즘 구독 서비스에도 그러한 점을 조금씩 갖추는 것 같아요. 예전이라면 막연히 “우리는 과일 전문가인데 이것을 추천해”였다면, 지금은 “너의 지난 선택을 보아 과일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지금 계절에 어울리는 과일을 추천해줄게” 하는 식이에요. 아쉬운 점이 채워지니 사람들이 더 찾는 것 같아요. 타인의 추천이 낯설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된 거죠.


머리 좀 환기해볼까요? 요즘엔 출근 어떻게 하고 있어요?
똑같아요. 스튜디오에 가거나 집에서 일해요. 여전히 미팅이 많고 봐야 할 전시도 많아서 오토바이로 이동하고 있어요. 서울의 교통 체증과 딱지를 피하기 위해선 오토바이가 최적이에요. 실용적인 교통수단이죠.


오토바이와 꽃의 조화라니‧‧‧. 편견인 거 아는데 반전처럼 느껴져요.
그런 얘기 엄청나게 들어요. 주로 맏며느릿감이라는 말을 듣는데 제가 진짜 싫어하는 말이에요. 굳이 따지자면 싸가지 없는 며느리에 가깝거든요.(웃음) 물론 결혼 생각도 거의 없지만요. 워낙 활동적이어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해요. 자전거, 오토바이, 번지점프, 스쿠버다이빙, 절벽 수영 등 스릴을 즐기는 편이에요.


그런 활동에 비해 집은 좀 얌전한 것 같아요.
사람이 평면적이진 않잖아요. 자리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인간이죠. 제가 일할 때 이런 말을 많이 해요. “세상에 취향이 100가지가 있다면 101번째 취향을 알려드릴게요.” 그런데 사실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기 위해선 정말 많은 것을 접하고 소화하고 해석해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그만큼 잘 쉬어야 하고요. 집에선 완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 우디한 톤으로 자연스럽게 꾸몄어요. 밖에서 받은 엄청난 인풋을 집에서 쉬면서 소화시키는 거죠. 그럴 때 식물 역할이 크고요.


아니, 여기서 식물과 이어주시다니요! 너무 완벽한 거 아닙니까?(웃음)
이 흐름을 이어서 녹이실 수 있게!(웃음) 그런데 정말 식물과 함께 살다 보면 내 안의 혼잡함을 다듬을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휴식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영감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만약 지선 씨가 지금의 구독 서비스를 취소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 것 같아요?
완벽히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것을 보여주며 실패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대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브랜딩 일을 하다 보니 패키지도 주의 깊게 보는 편인데, 이왕이면 겉도 예쁜 게 좋잖아요. 요즘 친환경 소재로도 충분히 예쁘게 만들 수 있거든요. 디자인이 좋은 브랜드는 제가 또 다른 스토리감이 되어요. 꽃이라는 것도 아무리 특별하게 키워도 결국 비슷하거든요. 옛날에 처음 파란 장미가 나왔을 때처럼 희소성이 있다면 모르겠지만요.(웃음) 그게 아니라면 그 외의 요소들이 구독 서비스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기대하는 플랫폼의 모습이 있다면요?
사실 저는 아직도 꽃을 보지 않고 온라인으로 사는 걸 완전히 믿진 않아요. 특히 저 호접란은 사진으로 봤을 때 저와 정말 안 맞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선물로 받고 보니 집과 되게 잘 어울리더라고요. 결국엔 실물로 보고 만져봐야 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온라인으론 절대 해결하지 못할 것을 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마이크로한 브랜드들이 탄생하고 있잖아요. 임대료를 내고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유동적 모습으로 플랫폼을 운영하는 건 어떨까 싶어요. 예를 들면, 7월 첫째 주에 어니스트 플라워가 팝업을 열고, 둘째 주엔 열화당이 간이 책방을 열고, 셋째 주엔 작은 문구 브랜드가 가게를 운영하는 거죠. 고객이 온라인에만 머물지 않고 즐거움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구조 다세대빌라 3층
면적  49.58㎡(15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5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