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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방을 찾아서

Finding a Room with Nothing

아무것도 없는 방을 찾아서

Editor.Hyuna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27세 / 조영욱

그래픽 디자이너


Conditions

지역 서울시 광진구 화양동
구조 오피스텔
면적   11㎡(3.4평)
보증금 1억2000만 원(전세)

 

Room History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한 사람들 앞에는 공통된 덫이 놓여 있다. 꽃무늬 벽지와 체리색 몰딩이 바로 그것이다. 화양동에서 처음 자취를 시작한 조영욱은 이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수중에 있는 전세금으로 백지 상태의 집을 구하려면 평수를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그가 마주한 방은 3.4평. 자기만의 작은 캔버스를 찾은 그는 걸어 다니며 채집한 풍경을 집 안에 들이기 시작했다.



브랜드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나요?
브랜딩은 말 그대로 브랜드를 만드는 거예요. 신규로 브랜드를 론칭할 때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디자인 기획을 하고 결과물을 만들죠. 로고부터 룩북, 쇼룸 인테리어까지 다양한 일에 관여해요.

이제 서울살이 5개월 차라고 들었어요. 첫 집을 화양동에 구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대전에서 살면서 대학교까지 다니다 직장을 구해 서울로 올라왔어요. 회사가 강남인데, 그쪽에 구하려니 너무 비싸더라고요. 그나마 교통이 편리한 곳으로 찾다가 이곳으로 오게 됐어요. 건대입구역에서는 회사뿐 아니라 서울 어디를 가도 그리 멀지 않더라고요. 한강도 가깝고요.

살아보니 화양동은 어떤가요?
살기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요리는 잘 안 하거든요. 보통 냉동식품을 먹거나 김치볶음밥 정도만 해 먹는데, 근처에 ‘맛의 거리’가 있어서 밥을 먹거나 술 마시기 좋아요. 세종대학교와 건국대학교가 있어서 그런지 물가도 비싸지 않고, 시장도 있고요.

처음 혼자 사는 집을 구한 건데, 어떤 기준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우선 오래된 건물은 배제했어요. 제가 가진 전세금으로 평수가 더 넓은 곳을 구할 수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좁더라도, 최소한의 공간에서 살더라도 신축 건물을 원했어요. 그래서 여기 오게 된 거죠.

신축을 고집한 이유가 있나요? 보통 오래된 건물에 살다가 여러 가지 고충을 겪고 신축으로 가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백지 상태의 집을 꾸밀 수는 있지만, 눈에 거슬리는 걸 제 예산으로 고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어요. 예산이 충분했다면 벽지를 뜯어내고 페인트칠할 수도 있었겠지만요. 전세금은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마련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돈을 더 들이지 않아도 되는 방을 찾는 게 중요했어요. 다시 말하면 눈에 거슬리는 디자인이 없는 곳을 찾은 거죠. 무 無에 가까운 깔끔한 방 말이에요.

집을 보러 다닐 때 현재의 예산으로 구할 수 있는 서울의 집 상태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나요? 1억 이상의 전세 자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잖아요.
‘아, 생각보다 진짜 비싸다!’ 그래서 제게 남은 선택지는 평수를 줄이는 것밖에 없었어요. 이 집도 3.4평이잖아요. 맨 처음에는 진짜 좁다고 생각했는데, 들어와서 살아보니까 필요한 건 다 넣을 수 있더라고요. 운동기구도 있고요. 지금은 이 정도가 혼자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이라는 생각을 해요.

‘내 집이 이런 생김새의 집, 이런 분위기의 집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상 像을 갖게 해준 것이 있나요?
서울에 올라온 후 예쁜 카페나 편집숍, 브랜드 매장에 갈 일이 많았어요. 그런 공간들의 인테리어를 보면서 충격과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제품을 팔거나 서비스를 위해 마련한 공간을 전시장처럼 꾸민 곳도 있었고, 공간 자체가 예술 작품인 느낌이 든 곳도 있었거든요.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공간에 투자했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공간에서 영향을 받아 소소하게나마 조명으로 집 분위기를 연출해보려고 노력했어요.



영욱 씨 집에서 조명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집에 어떤 조명등이 있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궁금해요.
사실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에는 차이가 있잖아요. 아무리 멋져도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집은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여야 하니까요. 이 집 전체가 흰색이다 보니 자칫하면 분위기가 차갑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래서 간이 테이블 위의 무드등을 활용해 따뜻한 분위기를 내려고 했어요. 침대 아래에 있는 간접등은 포인트를 주고 싶어서 설치한 거예요. 찾아보니까 이런 간접등은 색상에 선택지가 별로 없더라고요. 붉은색, 푸른색, 녹색, 분홍색 정도예요. 그런데 붉은색이나 푸른색은 을지로 술집 느낌이라 집에 하기는 부담스러웠고요. 그나마 분홍색이 형광색도 아니고 따뜻한 색도 아닌 중간 정도의 은은한 색이라 골랐어요.

설치하기 어렵지는 않았나요?
설치하기 정말 쉬워요! 긴 간접등은 침대 거치대 아래 넣고 콘센트를 연결하기만 돼요. 가격은 1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비싸지 않아서 더 좋았죠.

조명 외에도 집 안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 적용한 방법이 있다면요?
집 안 곳곳에 있는 원형 아크릴요. 투명한 물건이 조명을 받으면 보기 좋겠더라고요. 조명이랑 같이 있을 때 극대화되는 아이템이라 선택했어요.

물건에는 미련이 없지만 꽃은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침대 위 벽을 가득 채운 꽃 포스터가 인상적인데, 직접 인쇄한 거라고요.
제가 디자인을 하다 보니 길 가면서 예쁜 무언가를 보는 걸 좋아해요. 꽃 사진들도 산책하다가 휴대폰으로 찍은 거예요. 촬영하겠다고 뭔가 챙겨서 나간 게 아니라요. 친구 만나러 가다가, 출근하다가, 동네 걷다가 들여다보고 싶은 게 생기면 찍었는데 자연스럽게 꽃을 많이 찍었더라고요. 살아 있는 동식물 중에서 꽃은 유일하게 아름다움을 위해 태어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꽃을 인테리어에도 활용하고 싶었는데, 생화는 가격도 비싸고 계속 교체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포스터로 타협한 거죠.

간이 테이블 위에는 생화가 좀 있는데요?
아, 이거 인터뷰한다고 처음 사 봤어요.(웃음) 초록색으로 맞추려고 골라서 산 건데, 동네 꽃집에서는 제가 원하는 걸 안 팔더라고요. 그래서 청담동 가서 샀어요. 다시는 못 살 것 같아요. 너무 비싸서.

사실 집에 늘 생화를 두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주기적으로 관리해줘야 하고, 잘 버려야 하고, 반려동물이 있는 경우에는 독성 여부도 확인해야 하니까요. 꽃을 직접 들이지 않고 사진으로 대신해서 더 좋은 점이 있나요?
저도 다른 사람들이 인테리어한 집 사진을 많이 봤어요. 예쁘긴 한데, 대부분 비슷비슷하고 개성이 있는 집이 별로 없더라고요. 저는 디자인하는 사람이니까 여기저기서 예쁜 걸 따와서 집을 꾸미지는 말자고 생각했어요. 나만의 무언가를 찾고 싶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제가 직접 찍은 꽃 사진으로 인테리어를 하게 됐고, 이런 점에서 다른 집과 차별화되는 것 같아요.



집이 작을수록 시선이 닿는 곳에 어떤 풍경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집을 가꾸는 힘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저는 공간을 백지로 만드는 것이 좋아요. 뭔가 다른 걸 그리기 위해서 말이에요. 일단 무의 상태로 만들어야 다른 일을 할 수 있거든요. 비우고 버리는 게 일종의 취향인 것 같아요.

배울 수 있다면 배우고 싶은 취향이네요.(웃음) 이런 취향은 어디서 기인한 것 같나요?
사실 유년기에 제 취향을 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런 성향은 있었던 것 같아요. 또 군대에 있을 때는 정리하고 통일하는 게 일이라 더 심해졌고요. 학교에서 디자인할 때도 그런 강박이 나타나더라고요. 포스터를 작업할 때도 쓸 수 있는 요소가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최소한의 것만 놓고 일정한 위계 아래서 작업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인지 제 작업은 깔끔한 느낌이 강한데, 이게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아요. 사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정해진 규칙이나 틀을 깨서 어지럽히고 집어넣는 작업도 필요한데, 그건 정말 못 하겠더라고요.



집 평수에 비하면 창은 큰 편이지만, 보통 창문은 잘 열지 않고 생활한다고 들었어요. 문을 열면 앞 건물이 풍경을 가려서 그런 걸까요?
그렇기도 한데, 창문을 열어두면 좀 시끄럽거든요. 지나가는 사람들 말소리나 차 소리가 들리니까요. 그리고 창문이 한쪽에만 있어서 바람이 잘 안 통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창문이 최소한의 환기 이상 기능을 하지 않는 거네요. 아쉬운 점은 없나요? 다음 집에서는 ‘이런 창이었으면 좋겠다’라든지.
풍경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앞에 건물만 없어도 좋을 것 같아요. 음, 해가 잘 들어오는 높은 층이면 좋지 않을까요?

영욱 씨는 창문 밖에 이렇다 할 풍경이 없는 대신 집 안에 풍경을 만들었잖아요. 집 구조상의 한계에 체념하지 않고 보고 싶은 풍경을 구현한 일이 어떤 의미였나요?
제가 원래는 혼자 있는 걸 정말 좋아하는 집돌이였거든요. 지루해하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여기 와서 살다 보니까 혼자 보내는 시간이 좀 우울한 거예요. 방이 좁아서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공간을 예쁘게 꾸미면 덜 우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인테리어를 시작한 거예요. 창문 너머 풍경이 없으니 내부를 최대한 예쁘게 꾸민 거고요.

채광과 조망이 확보되지 않은 집이 굉장히 많은데, 영욱 씨는 빛과 풍경이 한 사람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요? 누군가는 “빛, 풍경은 없어도 살 수 있잖아?”라고 말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인간답게 사는 데 단순히 먹고 자는 물리적 공간만 필요한 게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채광과 통풍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이 집도 사실 남향이거든요. 그런데 집 바로 앞에 건물이 있어서 어두운 거예요. 채광이 안 좋은 점도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데 한몫 거드는 것 같아요. 가끔 대전 부모님 댁에 가면 빛이 너무 많이 들어서 깜짝 놀라요.(웃음) 그 집에 가면 ‘이게 사람 사는 환경이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죠.



필요 없는 건 그때그때 버리고, 최소한만 가지고 사는 게 모토라고 들었는데 물건을 사고, 버리는 데 원칙이 있나요?
저는 명품을 소비하진 않지만, 싸구려는 사지 않으려 해요. 신발이든 옷이든 생필품이든 저렴한 제품 여러 개를 샀다 버리기보다는 제대로 된 하나를 골라서 오래 쓰는 편이죠. 불필요한 건 절대 구매하지 않고요. 예를 들어 같은 기능을 하는 물건이 여러 가지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거죠.

단순히 장식용 물건은요? 보는 아름다움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도 있잖아요.
그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래서 아크릴도 사고, 액자도 붙이는 거죠. 보는 아름다움을 위해 만든 물건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사실 인테리어할 때도 가전제품이나 가구보다는 소품값이 많이 들었는데, 남자 친구들한테 말하면 미쳤다고 하죠. 돈 쓸 데가 그렇게 없냐면서요.

<디렉토리>는 제한된 상황 안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립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는 매체예요. 영욱 씨는 자립의 기술 중 어떤 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나요?
일단 서울에 오면 보이는 게 많잖아요. 멋있고 잘나가는 사람도 수두룩하고요. 그런데 그런 것만 보고 제 처지와 비교하면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동료 중 한 명은 학벌도 좋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데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괴감을 느끼더라고요. 이렇게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지 않을까요? 물론 발전을 위해서 높은 곳을 바라보는 건 좋지만, 삶을 살아갈 때는 자기 나름의 만족을 찾고 적당히 욕심부리는 일도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지 않으면 서울에서 혼자 못 살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자립하기 위해 경제 관련 지식을 조금 더 쌓고 싶어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광진구 화양동
구조 오피스텔
면적   11㎡(3.4평)
보증금 1억2000만 원(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