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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나 빼고 다 열심히 사는 것 같아…

Everyone seems to live so hard, except me

왠지 나 빼고 다 열심히 사는 것 같아…

Writer. Inhye Hong / Illustrator. Subin Yang Article / essay

15년간 광고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말하자면 20대 초반부터 10년이 넘도록 엇비슷한 생활 패턴으로 살았다는 의미다. 그쯤 했으면 이 리듬이 몸에 익었을 법도 한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기상 시간이다. 나는 15년을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는데 놀랍게도 그 오랜 세월 동안 맑고 개운한 심신으로, 자의에 의해 반짝 눈을 뜬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기상하는 느낌은 한결같았다. 달달하고 포근한 잠의 세계 어딘가를 유영하는 나에게 찌릿 불길한 예감이 스치더니 알람의 모진 손가락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억센 손가락은 내 귀를 붙든 채 춥고 딱딱한 현실로 질질 끌고 나오곤 했다. 나는 한결같이 그에 저항했다. 이불을 붙들고 늘어지며 “5분만 더, 10분만 더” 하고 흐느꼈다. 그러다 더 물러설 수 없는 순간에서야 이부자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근태 문제로 혼쭐이 나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몸을 일으켰다는 얘기다. 물론 그때 일어나면 여유로운 출근 준비는 당연히 불가능했다. 아침은 언제나 비상 상황이었다.

비단 아침에 울리는 알람뿐이 아니었다. 회사 생활을 하는 내내 나는 누군가에게 귀를 잡혀 끌려다니는 기분으로 살았다. 출근을 하면 아이디어 미팅이, 미팅을 마치면 광고주 보고가, 보고를 잘 마치면 촬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이동 수단 안에서는 늘 시계와 서류를 동시에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초조하게 시계를 봐야 했고, 곧 만날 누군가에게 멍청한 소리를 늘어놓지 않기 위해 손에 쥔 문서를 살펴야 했다.

그렇게 15년의 세월을 보내고, 나는 많은 것을 상실했다. 업무적 성취감이나 기대감, 열의 같은 것들. 당시 나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야.” 마음을 지니고서는 모진 일상을 버티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으로 ‘혹시 나도 번아웃?’ 체크리스트 같은 걸 해봤는데 100% 나의 증상이었다. 이러한 마음 상태가 하나의 증후군으로 편입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사실 이것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 팀장을 봐도 신입 사원을 봐도 모두가 눈과 코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 같았다. 회사란 속이 타고 있는 사람들의 조직이었다.

     

 그때부터 퇴사를 생각했다. 남이 정해준 루틴에서 벗어나 이제는 나의 스케줄로 살고 싶었다. 나의 일과를 내가 조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을 몸담았던 조직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퇴사’라는 말의 무게감이 힘겨웠다. 퇴사가 마치 퇴학처럼 여겨졌다. 정해진 과업을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탈락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졸사’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다. 같은 일을 15년 해왔으면―내 딴에는―할 만큼 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졸업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졸사 선언을 하고 회사를 나왔다.

졸사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15년째 맞춰오던 알람을 꺼버린 것이다. 이제 나는 모닝콜이, 회의 알람이, 근태 체크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이제 보고 있던 드라마가 짜릿해 바로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고 싶어도 “내일 오전에 회의가 있으니까•••” 하며 슬프게 화면을 끌 필요가 없었다. 자고 싶을 때 자면 되기 때문이다. 알람의 모진 손가락에 멱살을 잡혀 꿈 바깥으로 질질 끌려 나올 필요도 없었다. 커튼 사이로 느긋하게 파고들어 눈꺼풀에 내려앉는 햇살에 천천히 눈을 뜨면 그만이었다. 원하지 않는 자리에 불려가 불편한 식사를 할 필요도 없고, 난데없는 경쟁 PT 일정에 예약해둔 휴가를 취소할 일도 없었다. 이제 나는 정해진 것 없이 유동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쉬는 일상. 그토록 바랐던 늘어진 시곗바늘의 삶.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런 루틴이 없는 삶에는 권태가 쉽게 찾아들었다. 원할 때 몸을 누이고 내킬 때 아무거나 주워 먹는 생활은 나를 점점 무겁게 했다. 단순히 체중의 문제가 아니었다. 영혼이 둔중해지는 느낌이었다. 쉬면 돌아올 줄 알았던 기대나 열의 같은 것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무기력해진 기분이었다. 하루에 낮잠을 두 번에 걸쳐 자는데도 어쩐지 더욱 기운이 빠져갔다. 처음엔 “회사 독을 빼느라 그래”라며 핑계를 대곤 했지만, 어느 순간 그 변명에서도 단물이 빠지고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 삶이 하나의 구조물이라면 정해진 수면 시간이나 식사 시간, 출근 시간 등은 일종의 기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기둥 없는 내 삶이 하염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물론 회사를 나서며 이제 날카로운 첨탑이 높다랗게 선 대성당 같은 삶을 접고, 텐트 정도만 치고 살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그 텐트에도 기둥은 필요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폴대 없는 텐트를. 그것은 제 힘으로 서지 못해 무겁게 내려앉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공간을 이루지 못한 천의 무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무기력의 끝에서 나는 일상에 작은 기둥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기본은 수면 루틴과 식사 루틴 같은 소박한 녀석들이었다. 오전 10시 전에는 일어날 것, 오후 2시와 8시에는 식사를 할 것 등등. 그리고 집 안 구조를 바꿔 방 하나를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는 공간으로 꾸렸다. 책상 2개를 붙여 하나는 글 쓰는 용도, 다른 하나는 그림 그리는 용도로 정해뒀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떠서는 마치 출근하듯 그 방으로 갔다. 때로는 정말 회사에 나가듯 씻고 옷을 갈아입고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그 방으로 입장하기도 했다. 단순하고 느슨한 플랜이지만 효과는 있었다. 그제야 삶이 다시 구동하기 시작했다. 잃었던 의욕과 생기가 돌아왔고, 다시 글이 써졌고 그림이 그려졌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흐르는 시간에는 마디가 없다. 마디가 없는 시간은 어제가 오늘 같고 지금이 아까 같다. 그 밋밋하고 감흥 없는 나날들엔 권태와 무기력이 파고들기 쉽다.

     

한때 나는 바늘 하나 찔러 넣을 틈 없는 빡빡한 일상을 살았다. 그리고 또 한때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질펀하게 늘어진 시절도 보냈다. 두 일상 모두 그리 즐겁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나는 기둥이 드문드문한 작은 텐트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철제 기둥이 한 걸음마다 촘촘히 박힌 집을 상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움직일 때마다 기둥에 이마나 정강이를 부딪치며 멍이 들 것이다. 하지만 기둥이 하나도 없는 텐트는 어떤가. 그것은 몸에 감겨들어 나를 점점 더 수렁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나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나의 리추얼을 찾았다. 점선으로 된 일과표를 만들었다. 어긴다고 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지켰을 때 스스로 흡족한 루틴들. 그 느슨한 리듬 안에서 나의 오늘이 행복하게 춤을 춘다.       

    

   

루나 (홍인혜)

시인, 만화가, 카피라이터. 카툰집 《루나파크》, 산문집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혼자일 것 행복할 것》 등을 만들었다. 글을 쓰고, 이름을 짓고, 광고안을 내고, 그림을 그리는 등 뇌와 손이 협응하는 일은 뭐든지 하며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