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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것들의 동네

Neighborhood of Kids These Days

요즘 것들의 동네

Writer.Pilho Kang / Illustrator.Subin Yang Article / essay




어느 날부터 거실이란 공간은 추억의 책장을 넘겨야만 아련히 회상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나의 삶에서 떠난 지 오래다. 뒤이어 발코니와 서재가 가출을 선언했고, 욕조가 떠난 자리에는 샤워 부스만이 덩그러니 남아 습기 가득한 숨을 토해내고 있다.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 주요 일간지에서 심심하면 꺼내 드는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기사 주제가 아니던가. 방 한 칸에 주택의 진액만 담아야 하는 운명은 내 의지 밖에서 살포시 그곳에 놓인 현실이다.


해체의 시대

모든 걸 하나로 집약하던 시대가 저물고 해체의 시대가 도래했다. 임대 면적 단위가 큰 오피스의 공실률이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큰 공간을 작게 나눈 코워킹 스페이스는 우후죽순 생겨나는 추세다. 마이카의 시대가 저물고 카셰어링이 보편화되었다. 심지어 유흥과 여가 선용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노래방마저 코인 노래방으로의 변신을 피할 수 없을 정도다. 이 모든 현상의 공통점이라면 ‘시간, 공간, 서비스를 잘게 나눠 다른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일 텐데, 나는 이 공유 열풍의 본질이 유별나거나 복잡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도성장기를 뒤로한 대한민국 사회는 매년 단군 이래 최악의 불황에 빠져 있다고 한다. 일인당 GDP는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이지만, 리즈 시절의 소득 증가 폭에 비교하면 현실은 초라하다. 그 결과 과거에는 개인별로 점유하던 재화를 이제는 홀로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태어나 지금까지 당연하다는 듯 누려온 서비스와 재화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고, 부득이하게 다른 누군가와 합심해 원하는 재화를 나눈 뒤 한정적이나마 누리려는 것이다.

주거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빛이 나는 솔로’를 선포하는 1인 가구 증가 시대, 치솟는 임대료와 정체된 청년 소득의 불협화음은 소형 주택 권하는 사회를 고착화하고 있다. 그 결과 예전 같으면 가정집의 방 한 칸이었을 규모의 공간에 한 가구가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설비를 속된 말로 ‘때려 넣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거실, 부엌, 침실, 공부방과 눈물을 머금고 작별해야만 한다.

하지만 유사 이래 가장 유복하게 살아왔다는 2030 세대가 거실의 안락함과 부엌의 달콤함, 침실의 편안함을 깨끗이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들, 아니 우리는 동네 속 다양한 공간을 헤매며 좁은 방구석에서 기대할 수 없는 ‘집’의 안락함을 갈구하는 중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할아버지 세대, 어머니 세대와 요즘 것들의 동네에 대한 정의는 꽤 다르다. 위 세대에게 동네란 부동산 시세 방어 여부를 판가름하는 잣대이자 육아와 통근을 위한 입지적 배경에 불과했다. 그러나 2030 세대는 거주와 여가의 연장선에서 동네를 바라보기에 그 시선이 자못 비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토록 장황하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은 내가 지금 사는 동네를 택한 이유는 맥 빠질 정도로 단순하다.



나 비록 지금은 여기 살지만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한 이후로 무려 8년 동안 삶의 터전이 되어준 서울 성북구 안암동은 새로운 고향으로 내 맘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런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데 두려움을 느낀 건지, 나는 기나긴 통근 시간을 감수하며 안암동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침대에 멍하니 누워 창문을 바라보던 나는 야구 경기를 관람하다가 작가가 되길 결심한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문득 지긋지긋한 이 동네를 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나는 대범하진 못했다. 머리 아플 때 잠시 마실 나가 머리를 식히는 것처럼 소심하게 택한 동네, 그곳이 바로 도보 15분 거리의 옆 동네 보문동이다. 지극히 충동적이면서도 즉흥적으로 택한 동네였지만, 지금까지 살아본 보문동은 나름대로 소소한 장점을 지닌 동네다.
우선 사무실이 위워크 을지로점으로 잠시 이전한 상황과 맞물려 통근 시간이 반 토막으로 줄어들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탄 뒤 30분 정도면 을지로3가에 닿을 수 있었고, 이는 달콤한 늦잠과 퇴근 후 야행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이 외에도 걷기 좋은 낙산공원과 성북천이 지척에 있다는 점, 걸어서 30초 거리에 편의점이 있는 ‘편세권’이라는 점, 가스레인지에 불을 켤 힘조차 없는 현대인의 주린 배를 달래줄 식당이 근처에 있다는 점, 나가는 것조차 귀찮을 때 주문하기 좋은 배달 음식 라인업이 무난하다는 점 등은 내가 보문동에 눌러앉아도 나쁠 게 없는 이유다. 하나 안타깝게도 나는 회사 생활을 시작하던 지난 2015년부터 남몰래 한 동네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비록 보문동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일상의 안온함과 감각적인 경험 사이 

동네를 탐구한 뒤 이를 글로 옮기는 이는 적어도 동네에 관한 한 ‘금사빠’가 되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솔깃한 동네는 계속해서 쌓여만 간다. 을지로는 계단을 힘들게 오르면서 눈앞에 펼쳐질 광경을 기대하는 설렘이 있어 좋다. 비록 상업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이태원은 LGBT, 무슬림, 빈티지 소품, 클럽 등 다채로운 문화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어 매력적이고, 성수동은 공장 지대 특유의 장쾌한 스케일이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특정 동네가 매력적인 콘텐츠를 지녔다는 사실 자체가 살고 싶은 동네를 택하는 필요조건이 되진 않는다. 본디 업무 지구에 가까운 을지로와 준공업지역 성수동은 밀레니얼이 거주하기 좋은 시설과 규모를 갖춘 주택이 매우 적은 편이다. 이태원 일대는 근린생활시설과 교통망이 아쉽다. 그래서일까? 직장 생활을 하며 곁에서 지켜본 연희동은 거주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굉장히 매력적인 동네란 생각이 든다.

우선 연희동은 고급 단독주택이 지역 대다수를 점유하는 동네로서 건축물의 평균 높이가 낮은 편이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마천루가 가득한 서울 안에서 보기 드문 탁 트인 시야를 만끽할 수 있다. 또한 택지 간격이 넉넉하게 배치되어 널찍한 골목을 걷기도 좋다. 그 결과 거대한 건축물에 삶이 가려지는 대다수 신도시와 달리 연희동에서는 여백이 많은 골목을 따라 주민들의 일상이 유려하게 흐른다.

이른 아침에는 빵 굽는 냄새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리고, 오후에는 하굣길을 걷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해가 질 무렵이면 주민들은 일제히 반려견과 함께 동네 산책을 즐긴다. 이런 소소한 풍경들이 하나로 모여 피곤한 직장 생활과 구분되는 ‘나만의 온전한 일상’을 완성해준다. 여기에 더해 연희로 일대 상점가와 궁동공원 일대 주택가가 명확하게 구분된다는 점도 밀레니얼이 중시하는 ‘일상의 안온함과 감각적인 경험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가능케 한다.

어디 그뿐인가. 연희동은 방구석을 잃은 이들이 필요로 하는 보석 같은 로컬 상점을 품은 동네다. ‘연희동칼국수’, ‘녹원쌈밥’ 등의 식당과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피터팬1978’ 베이커리는 부엌의 결핍을 달래주는 대표 주자들이다. 그리고 마음을 간질이는 책들이 가득한 책방 ‘유어마인드’, 뱅쇼 한 모금에 스산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책바’는 만인을 위한 거실 겸 서재가 되어준다. 대형 마트보다 다채로운 식음료와 잡화를 갖춘 동네 마켓 ‘사러가마트’는 아담하면서도 세련된 몰세권을 제공한다.


결국 맹모삼천지교를 몸소 실천한 우리네 부모님의 집 구하기와 ‘~세권’을 따지는 2030 세대의 집 구하기는 각자의 욕망을 투영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열악한 경제적 여건에 놓인 밀레니얼은 주택을 에워싸고 있는 동네까지 삶의 터전으로 간주해 이를 깐깐히 살핀다.


바라건대 이런 막막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내 맘을 기댈 동네가 있다면, 나는 그 동네를 ‘건강한 일상이 살아 숨 쉬는’ 연희동이라 말하겠다. 그리고 꿈꿔본다. 하루 일을 마치고, 석양에 연희동으로 돌아오는 꿈을.


강필호

로컬을 이야기하는 기업 ‘어반플레이’에서 아카이브 랩 팀장을 맡아 <아는동네>, <아는도시> 등의 서적 제작에 참여했다. 역마살과 집돌이 기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현상 맥락과 TMI를 사랑하는 투머치토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