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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묵음

The Silence of The City

도시의 묵음

Writer. Junghyun Kim / Illustrator.Subin Yang Article / essay



도전을 무서워하는 건지, 고집이 센 건지 나는 좋아하는 곳이 생기면 내리 그곳만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런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거긴 안 가!”라며 학을 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핫한 식당이나 카페에 가기도 하는데, 그곳에 있는 나는 왠지 어색한 느낌이어서 안절부절못한다. 분명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지만 자꾸 주변을 의식하게 되고, 좁고 익숙한 나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렇게 느끼는 장소의 특징은 사람이 아주 많거나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창 네온사인 문구가 유행했을 땐 핑크빛 그림자만 봐도 못 볼 것 봤다는 듯이 서둘러 길을 떠나곤 했다. 유난이라면 유난인 일.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장소에 가는 건 성격이 맞지 않는 친구와 몇 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과 비슷했다. 생각해보시라.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는가.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곳에 가면 그곳의 주인인 양 아주 자연스러워진다. 그럴 때면 상대방에게 쉬지 않고 공간에 대해 아는 정보를 모두 말하는데, 사장님의 독서 취향서부터 화장실의 청결까지 모르는 게 없을 정도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인정받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 상대방이 다시 방문했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우쭐해져서는 묻지도 않은 다른 공간까지 소개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자주 가는 동네마다 좋아하는 공간을 하나씩 만들어놓는다. 언제든 자신 있게 추천하기 위해.

그러나 나의 애정에 비해 공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모두 없어진 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치즈빵이 유독 맛있었던 상수동의 빵집은 어느 날 수산 포차로 바뀌었고, 목조건물에 있던 차분한 분위기의 바는 안부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통의동의 자주 가던 크로켓집과 모자 가게도 처음부터 없었던 곳처럼 증발하고 말았다. 가게가 사라질 때마다 허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어 건물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곤 했다. 혹시나 이전한 건 아닐까, 창 너머로 메모를 찾기도 했다.


친구는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말했지만, 내게는 공간 이전에 그곳을 운영하던 사람을 잃는 것이었고 동시에 나의 추억을 잃어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돌이켜보니 내가 잃어버린 공간엔 공통점이 있다. 주민의 소소한 삶이 이어지던 동네는 어느 순간부터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색이 없는 가게들로 뒤덮여버린 것이다. 거리엔 주민이 항의하는 현수막이 하나둘 생기면서 동네는 더욱 어수선해졌다. 나는 그 현상을 단순히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일상에 뚝 떨어진 변이와 위협을 단순히 사회 용어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도시의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변화하지 않는 것을 ‘낙후’로 여기고, 변화하는 것을 유일한 ‘도약’처럼 생각하는 사회는 소중한 것을 쉽게 잃어버린다. 이미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는 늘 같은 실수를 답습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도시 사업이라면 미친 속도를 발휘하는 서울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오래된 건물을 밀어내는 게 특기다.



나의 작업실은 충무로에 있다. 종종 종이를 사기 위해 을지로에 있는 페이퍼 숍에 가는데, 천막을 두른 채 조금씩 사라지는 건물들을 보곤 한다. 바람에 나부끼는 천 사이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철골과 잔해들··· 바람이 멈추면 다시 고요해지는 장면은 마치 장의사가 마지막으로 죽은 자의 얼굴을 흰 천으로 덮는 것 같다. 나는 그 동시다발적인 장례를 목격하며 메이지 시대의 한 정치가 말을 조의문 대신해 곱씹어본다.


“진정한 문명은 산을 없애지 않고, 마을을 부수지 않고, 강을 거스르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다나카 쇼조



공간이 사라진다고 해서 역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희미해지는 건 분명하다. 우리는 이제 그만 ‘복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놀라울 정도로 푸른 옥상의 우레탄 마감,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와 고층 건물들, 한번 유행하면 봇물 터지듯 생기는 프랜차이즈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자본으로부터 밀려난 사람과 기술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빈터 위에 더 큰 자본을 불러들이는 일 말고 과연 대책은 없는 걸까? 과연 이 사회에 공존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이런 현상은 건축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세대 간의 간극을 어떻게 재단하는지 보여주는 예이다.

나는 도시 재생이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아주 단순하게도 좋아하는 공간을 잃어버린 아쉬운 마음에서 시작한 글이다. 정형화된 한국 사회에 진이 빠진 젊은이의 넋두리라고 할까? 나는  개인의 추억을 언제든 불러들일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고 싶지 않고, 치열한 자본주의사회이지만 그래도 꾸준함으로 먹고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으면 좋겠다. 켜켜이 쌓인 개인의 역사를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밀어내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이다. 내가 원하는 건 깨끗한 도로나 새 건물이 아닌, 찾아갔을 때 그 자리 그대로 있는 사람들이니까.

도시는 수많은 건축으로 이뤄지지만 그곳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건물이 무너질 때 무엇이 함께 사라지는지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김정현

서울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항상 제주에 가 있다. 직업은 바리스타. 제주의 한적한 동네에서 작은 커피숍을 열고 싶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환심을 사기 위한 신메뉴도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