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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

A Story That Begins with Seeds

씨앗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

Writer. Jeju / Illustrator.Subin Yang Article / essay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대전에서 서울로 출발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커다란 배낭엔 간단한 생필품이 들어 있고 양손으로는 그림 그릴 때 사용하는 컴퓨터를 들었다. 내가 향하는 곳은 아현동 고시원. 계단이 계단을 낳는 듯한 끝없는 오르기를 반복하고서야 그곳에 도착했다. 카운터에서 키를 건네받아 컴컴한 복도로 들어서는 길은 알 수 없는 나의 미래 같기도 해서 조금은 두려웠다. 내 방은 206호. 침대로 꽉 찬 1.5평의 작은 방에서 나의 서울 생활은 시작되었다.


TV는 이어폰으로 시청하기



벽면에 붙어 있는 수칙 중 하나였다. 나는 그 문장이 재미있기도 하면서 서글펐다.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나 해당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집에서도 해당하는 일이라니…. 아마 이어폰을 미처 챙기지 못하거나 사지 못하는 사람은 음소거된 TV를 계속 봤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 입 모양을 읽는 달인이 되었겠지.

하지만 그런 수칙 하나로 불평할 여유는 없었다. 이곳이 내가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래서일까? 고시원에 대해 좋지 못한 평판은 내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원동력이 되었다. 고시원은 사회에서 낙오된 자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더 큰 꿈을 꾸기 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여겼다.


꽃이 피기 전 봉오리를 보고 한껏 웅크려 있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식물은 봉오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세상으로 뻗어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그런 생각을 하면 어둡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곳도 나름 괜찮게 느껴졌다.




그러기에 함께 사용하는 샤워실도 주방도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나는 고향에 있을 때보다 고시원에서 더 행복해지려고 노력했다. 특히 먹는 것에 신경을 썼다. 엄마에게 전수받은 레시피로 요리하고, 때로 고시원 사람들과 나누어 먹기도 했다. “요리는 삶의 저력을 기르는 일”이라고 하던 어느 광고 문구를 보고 온몸으로 동의했다. 재료를 썰고, 양념하고, 간을 맞추는 등 나를 위한 식탁을 차리고 있으면 스스로 잘 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어 뿌듯했다. 간소하고 정갈한 음식은 현재의 삶이 30% 정도 괜찮게 보이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여느 영화 속 주인공처럼 긍정적 생각이 곧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일을 연거푸 거절당하며 서울살이의 고단함을 체감했다. 상처받은 가운데 생활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감도, 통장도 바닥을 보일 즈음 나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 그리는 꿈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나는 서울에서의 더 긴 호흡을 위해 밑바탕을 다지며 준비했다. 그렇게 딱 2년이 되었을까, 염리동 반지하에서 두 번째 독립을 시작했다. 수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마련한 2500만 원짜리 전셋집. 형광등을 켜지 않으면 해가 떴는지 날이 졌는지 알 수 없고, 반지하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었지만 그럼에도 마냥 좋았다. 내 힘으로 얻은 첫 전셋집이었으니까. 지난 2년간의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나의 공간에 대한 애정이 부활했다.

그때 처음으로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벽과 문지방에 페인트를 칠하고, 오래된 싱크대 상부장을 떼어내고 선반을 달았다. 다른 사람에겐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열악한 환경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아주 근사한 집이었다.

하지만 역시 삶은 예측할 수 없었다. 산꼭대기에 자리한 집은 위치가 무색하게도 비가 올 때마다 침수당했다. 장마로 이어지는 날이면 꼼짝없이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 가득한 오수를 퍼내야 했다. 재개발 지역이었기 때문에 주인에게 말해도 고쳐줄 가능성은 없었다. 여름이 될 때마다 물이 차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되니, 정성을 쏟아 벽지와 방문을 칠하던 기억도, 선반을 달던 기억도 사라지고 빨리 이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장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돈’이었다. 그래서 프리랜서의 꿈을 접고 취업하기로 마음먹었다. 고시원에서 나는 여러 가지 실험적인 그림을 그렸는데 그게 다행히 면접 때 좋은 반응으로 이어져 한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당시엔 진가를 몰랐던 과거의 그림이 현재의 내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꾸준히 개인 작업을 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편히 누워서 TV를 보고 싶었지만 졸린 눈을 비벼가며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았다. 그 덕에 고시원 생활을 담은 《쩜오라이프》를 출간하고, 이후에 두 번째 만화 《즐거운 생활》도 출간을 앞두게 되었다. 놀라울 정도로 바뀐 내 삶의 변화. 그러나 달라지지 않는 무언가도 있었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내 집 하나 얻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몇 년 동안 돈을 모아도 그사이 서울의 집값은 몇 배나 올랐고, 돌아오는 계약일마다 허무함을 느껴야 했다. 서울의 삶은 계속 나아지기보다 버티는 것에 가까웠다.

더 이상 서울의 집값을 감당할 수 없었고, 서울에서 지내야 할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한 나는 경기도의 한 빌라로 이사를 했다. 나는 시멘트 틈에서 자란 식물처럼 더욱 꿋꿋하게 행동했다. 그 공간 역시 완벽하진 않았지만 집에 대한 애정을 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계약에 앞서 셀프 인테리어의 가능 여부를 묻고, 집 곳곳에서 삶의 저력을 높일 방법을 궁리했다.


비싸고 깨끗한 집이 아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애정을 쏟아붓는 것이다. 그저 아무 공간에서 되는 대로 사는 것만큼 능률과 행복이 떨어지는 일은 없다.



고향을 떠나 생활한 지도 어언 10년,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 삶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공간에 마음을 보탠다. 평범하고 서툴러도 상관없다. 나는 봉오리 안에서 온 힘을 다해 살고 있다.



재주

재주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이며 주로 에세이 툰을 그린다. 아현동 고시원 생활을 담은 《쩜오라이프》를 출간하고, 사회생활 이야기를 담은 번째 《즐거운 생활》을 준비하고 있다. 삶에, 공간에 애정을 담으려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