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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를 지울 때

When Erasing Doodles

낙서를 지울 때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 Juyeon Lee Knock, Please

강병역

28세 / 브랜드 숍 판매직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구조 다세대주택 투룸
면적 약 52.8㎡(16평)
보증금 500만 원
집세 월세 50만 원

Room History

27세 보증금 500만 원, 월세 55만 원
(빌라 반지하 투룸)
27세 보증금 500만 원, 월세 50만 원
(다세대주택 1층 투룸)

강병역의 집 앞 담벼락엔 낙서 하나가 있다. “병신, 시발ㅋㅋㅗ”이라는 욕. 부산에서 살다가 친구의 꾐에 넘어가 서울에 집을 구한 강병역은 그 낙서가 꼭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고 한다. 알리고 싶은 영국 문화가 있는데 현실은 마음 같지 않았다고. 그는 지금 판매 일을 하면서 틈틈이 영국 문화를 알리는 일도 하고 있다. 직업을 묻는 내게 그는 ‘사실’, ‘현재’라는 단어를 사용해 설명했다. 언젠가 이 집을 떠날 때 그 낙서를 지우고 싶다고도 했다. 그때가 되면 ‘사실’과 ‘현재’를 뺀 강병역이 있을까? 나는 희미하게 남은 낙서 자국을 상상한다.




안녕하세요? 먼저 집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 은밀한 펍에 온 기분이네요.

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자주 와요. 상경한 지는 이제 7개월 됐고 여기가 두 번째 집이에요. 첫 번째 집은 넓어서 친구들이 많이 놀러 왔지만 지금은 보시다시피 좀 좁아서 놀러 올 수 있는 인원이 한정돼 있어요. 보통 거실에서 술 마시고 그래요. 


이전 집에선 혼자 살았나요?

같이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중간에 나갔어요. 부산 친구였는데, 함께 살다 보니까 사이가 틀어지게 되더라고요. 그 이후론 잘 안 보게 됐어요.


지금 옆방에서 자고 있다는 룸메이트도 부산 출신인가요?

아뇨, 지금 룸메이트는 서울에서 알고 지내다가 자연스럽게 친해진 친구예요. 네 번째 룸메이트이고요.


잠깐 얘기를 나눴지만 친구가 참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닌데 그냥 친구랑 있는 게 좋아서 자주 봐요. 현관문 앞에 있는 보드 보셨어요? 놀러 온 친구들이 항상 이름을 남기고 가거든요. 지금 한 스무 명 넘었을 거예요. 




병역 님을 알게 된 건 밴드 웨터 Wetter의 SNS를 통해서였어요. 집에 카세트와 음반이 많이 있어서 처음엔 음악 관련 일을 하는 줄 알았어요. 

문화 관련 일을 하고 싶지만 딱히 뭔가를 하고 있진 않아요. 지금은 한남동에 있는 브랜드 숍에서 판매 일을 하고 있어요. 그 외에 행사에 참여하거나 밴드 웨터 쪽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어떤 형태로든 도우려고 해요.


프레드 페리 행사 기획에도 참여했다고요. 어떤 계기로 일하게 됐는지요?

프레드 페리는 제가 좋아하는 영국의 모즈 Mods 문화를 대표하는 브랜드예요. 오래전부터 프레드 페리의 옷이나 굿즈를 모아왔는데 본사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모즈런이라는 행사가 있는데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고요. 모즈런은 모즈를 대표하는 전 세계적 행사예요. 우리나라에선 프레드 페리 코리아가 맡아서 진행했고요. 저는 프로그램의 일부 정도만 참여했어요. 


모즈라는 말이 생소해서 검색해봤는데, Moderns의 약자이더라고요. ‘사상이나 취미가 새로운 사람, 기성세대의 관습에 저항하는 집단’이라는 뜻이던데, 쉽게 말해 비트족 같은 건가요? 

조금 다른 느낌이에요. 사실 모즈가 보여주는 행동은 반항적이기도 한데 그 행동의 원인과 과정을 지켜보면 사실 내면이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1960년대 전쟁이 끝난 어수선한 시절엔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영향을 받았거든요. 개중에 부자들은 록커즈라고 해서 가죽 재킷을 입고 비싼 오토바이를 몰았고, 모즈는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였기에 어렵게 모은 돈으로 베스파나 람브레타 같은 이탈리아 스쿠터를 탔어요. 모즈는 주중엔 일하느라 주로 작업복을 입었지만 일을 하지 않을 땐 말쑥한 슈트를 입었어요. 여기서 재미있는 건 슈트를 맞추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M51이나 M65 같은 긴 야상을 입어 옷을 보호했다는 거예요. 모즈는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가난하지만 현대적으로 살았어요.  


모즈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어요?

6년 전쯤 부산에 있을 때 아는 형이 <콰드로페니아>라는 영화를 추천해줬어요. 처음 볼 땐 이게 뭔가 싶다가 두 번째 보는 순간 ‘아, 이거네’ 싶었어요. 주인공의 생활 방식이 저와 너무 비슷해서 동질감을 느꼈거든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지만 사고 싶은 건 한 번씩 사고 보는 거요.




집 안 곳곳의 심벌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모즈 타깃이라고 해요. 전쟁 당시 전투기에 박혀 있던 건데 전쟁이 끝나면서 쓰임을 잃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로 넘어왔어요. 왜냐하면 여기에 영국 국기 색깔이 다 들어 있거든요. 모즈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의미는 ‘쿨한 외관, 뜨거운 중심’이에요. 항상 그런 태도로 살자는 거죠.


지금 룸메이트가 네 번째라고 하셨잖아요. 여러 룸메이트와 지내보니 어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나요?

취향이 같은 친구와 살 땐 제가 어떤 음악을 들어도 끄라는 말을 안 해요. 한마디로 뭐든지 같이 즐길 수 있지요. 한데 취향이 조금이라도 안 맞는 친구는…. 제가 이 집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사실 단점밖에 없는 것 같아요.(웃음) 제가 청소하는 걸 좋아해서 더 힘든 것 같기도 해요. 다들 더럽더라고요. 저는 공간을 채우는 일만큼 중요한 게 유지하는 거라 생각해요. 그 방법은 역시 청소와 정리인 듯하고요. 사실 약간의 강박이 있어서 매일 대청소를 하는데, 제자리에 있는 물건을 보며 하루를 시작할 때 가장 행복해요. 그리고 주기적으로 배치를 바꾸는 것도 좋아해요. 아직 사고 싶은 가구를 다 못 산 상태라서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잘 배치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집에 애정이 많은 거네요. 어떻게든 잘 살아보고자 하는 거니까요.  

밖에서는 물질적으로 누리지 못하니까 집에선 나를 100%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공간이 주는 힘을 믿는 편이에요. 




제 방도 저기 옷 방만 해요. 그런데 그 안에서 정말 많은 일을 하거든요. 딱 이 정도가 좋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병역 님은 주로 방에서 어떤 일을 하나요?  

옷 방에도 나름대로 구역이 있어요. 프레디 페리 구역과 그 외 구역. 앉아서 그것들을 정리하거나 생각을 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하면 이 구질구질한 세상을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아, 가계부도 써요. 일기는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서 안 쓰는데 가계부는 현실적이잖아요. 어릴 때부터 써왔어요. 


이 집에서 좋아하는 공간과 싫어하는 공간이 있나요?  

집이라는 공간에서 좋다 싫다를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집은 가장 편해야 하는 곳이지요. 오롯이 내가 보이는 공간이니까요. 지금 사는 공간은 제 손이 가지 않은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을 만큼 너무 사랑해요. 단지 어떻게 더 나다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거죠. 


집에서 보내는 시간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때는 언제인가요?  

혼자 혹은 친구들과 함께 거실에서 술이나 음식을 먹을 때요. 거기다 친구들이 제 집을 칭찬해준다면 더 완벽해지죠. 또 한 가지 있다면 새 물건에 마땅한 자리를 찾아줄 때, 그리고 그 모습이 조화로울 때 만족감을 느낍니다. 




집에서 가장 아끼는 물건이 뭐예요?

거실에 있는 검은색 원목 테이블요. 어머니가 30대 때부터 쓰신 건데 자연스레 고향 부산의 제 방, 그리고 지금은 독립한 서울의 공간으로 오게 됐어요. 찍히고 낡고 휘고 다른 사람들에겐 버려져도 상관없는 모습이지만, 저에게는 우리 형제를 키워주신 어머니의 강인함이 새겨진 테이블이거든요. 앞으로 제가 어느 곳으로 이사 가든 가장 중요한 곳에 자리하고 있을 거예요. 


만약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다면 어떤 집을 원해요?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건이 있을 것 같아요.

듣고, 보고, 입는 공간만 분리되면 좋겠어요. 저는 이 음반들이 거실에 있어서 부엌에서 뭘 해 먹으면 냄새가 배지 않을까 걱정이거든요. 억지로 살고 있긴 한데, 나중에 이사 가면 세 공간이 분리되면 좋겠어요. 창문이 없어도 되니까요. 


최근에 이사했는데 예전 집과 5분 거리라고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요?

사실 뛰어가면 30초 정도 걸려요. 서울은 계획하고 올라온 게 아니라 친구가 계속 바람을 넣어서 충동적으로 오게 됐어요. 원래 부산에서는 요식업에서 일했는데 갑자기 가게가 문을 닫는 바람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죠.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서울에 친구도 몇 명 있어서 그냥 올라와버렸어요. 그런데 첫 집부터 문제가 생길 줄이야. 집이 넓어서 계약했는데, 입주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물이 새더라고요. 심지어 여름철도 아니었는데. 그 문제로 집주인과 실랑이하다가 결국 나왔어요. 

 

나올 때 보증금은 받았나요?

못 받을 뻔했는데 겨우 받았어요. 그것도 날짜가 많이 지나서. 그 집 바로 위에 있는 미용실 이모님이 저희가 불쌍해 보였는지 옆집에 있는 방을 소개비 안 받고 연결해주셨어요. 그게 여기예요.  




저는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요.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닌데, 주변에서 하는 말이 좀 떨어져 있어야 애틋해진다고 하더라고요. 병역 님은 어떤 것 같아요? 부산 집이 그리울 때는 없나요?

저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큰 편이에요. 어머니 혼자서 힘들게 저와 형을 키우셨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랐고 현재도 진행 중인데 서울로 오는 건 빠르게 결정했어요. 계속 고민만 하다간 어쩌면 못 갈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사실 지금은 좀 후회하고 있어요. 만약 내가 부산에서 안정적으로 요식업에서 일했으면 집에 돈을 보탤 수도 있고, 모든 여건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고요. 그래서 내년엔 부산으로 돌아갈까 고민하고 있어요. 1년을 지냈으면 잘 즐겼다는 생각도 들고요.
 

가족 품을 떠나보니 어떤 점이 힘들던가요?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적막함이에요. 부산 집에서 지낼 땐 혼자 있는 게 그렇게 좋았는데, 생각해보니 그때는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었더라고요. 올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룸메이트를 구하지 못해서 하루 이틀 혼자 지낼 때도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생각했어요. 


인터뷰 전, 메신저로 처음 자신을 소개할 때 “사실 현재는 매장 세일즈를 하고 있다”고 했어요. ‘사실’과 ‘현재’를 붙인 이유가 있나요? 정말 원하는 직업은 따로 있다는 식으로 들렸거든요.

잠시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부산으로 돌아가더라도 판매 일은 하지 않으려고요. 예전에 하던 요식업에서 일하면서 제 취향을 지켜가고 싶어요. 아까 말한 영화  <콰드로페니아> 속 주인공도 우편배달을 하는데 그 일을 끝내고 퇴근하면 확고한 취향을 지닌 리더가 돼요. 저도 그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좋아하는 일과 상관없는 직업에 종사한다고 해서 취향이 사라지거나 좋아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저는 제 또래가 독립했다고 하면 보증금은 어떻게 구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보증금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해결했어요. 첫 번째 집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5 만 원, 이곳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식비는 거의 안 나와요. 그래서 룸메이트한테 자주 얻어먹는 편이에요. 좀 뻔뻔하긴 한데, 제 사정을 다 아는 친구들이어서 사주면 아무 말 없이 먹어요. 대신 집안일을 열심히 하죠.  


생각해보면 집을 구하는 건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인 것 같아요. 사는 곳이 달라지면 마주치는 풍경과 사람이 달라지잖아요. 병역 님은 그걸 경험하기 위해서 떠나온 건가요?

어… 그걸 경험하기 위해서 온 건 맞는데, 보광동으로 온 것은….(웃음) 이 동네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참 많아서 제가 살던 부산 동네와 비슷해요. 그런 친근함 때문에 여기로 왔어요. 근처에 친구들의 작업실이 있어서 놀기도 좋고요. 저는 보광동을 벗어나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물이 새는 바람에 급하게 이사했지만 어쨌든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계약했겠지요.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요?

먼저 전체적인 구조도 나쁘지 않았고요. 나중에 보시면 알겠지만 맞은편 담장에 욕이 적혀 있어요. 제가 친구 방을 사용할 때 창문을 열면 바로 그게 보였는데, 그 순간 ‘맞다, 내 인생이 저렇구나. 언젠가 이사 갈 때 저걸 지우고 가야지’ 생각했어요.


욕을 지우고 싶다니 참 좋네요. 병역 님에게 집의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집을 벗어나면 당당하기보다는 작고 초라한 사람 쪽에 가까워요. 그래서 집만큼은 저를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빼곡히 채워요. 그게 저를 지켜주는 울타리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직은 어설프고 삐걱대지만 이렇게 채워나가다 보면 언젠가 높고 견고한 울타리가 완성될 거라 생각해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구조 다세대주택 투룸
면적 약 52.8㎡(16평)
보증금 500만 원
집세 월세 5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