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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의 산책

Ten Times of Stroll

열 번의 산책

Editor.Hyuna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김지훈

33세 / '스페이스 젤리' 대표


Conditions

지역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구조 2층 단독주택
면적 약 70㎡(21평)

Room History

 

20세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하숙 원룸(3평), 보증금 500만 원, 월세 35만 원
27세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오피스텔(8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70만 원
30세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오피스텔(8평),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48만 원
31세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다세대빌라 원룸(8평),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40만 원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삶의 모습을 조금씩 바꾸어가는 일이다. 식성이나 잠자는 습관을 파악하고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일을 같이 해보면서 서로 얼마나 다른지를, 그럼에도 왜 함께하고 싶은지를 찾아 나간다. 그렇게 다른 두 개의 삶을 함께 굴리며 발견한 모습은 제각각이라 더욱 아름답다. 반려동물과 사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강아지 젤리와 함께 사는 지훈 씨의 일상은 대충 뭉쳐놓은 강아지 털처럼 부숭부숭한 모양이다. 언제든 쉽게 형태를 바꿀 수 있고, 젤리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감싸 안을 수 있을 만큼 푹신하다. 여러 번의 산책과 일광욕으로 채워진 이들의 느슨한 일상에서는 갓 구운 빵 냄새가 날 것만 같다.





우주농업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요즘은 어떤 사업에 집중하나요?
최근에는 경기문화재단과 농업교육 및 농업 문화 콘텐츠 사업을 주로 하고 있어요. 주택 옥상에 설치할 수 있는 수경 재배 온실도 준비하고 있고요.

사무실 갈 때에도 젤리와 항상 같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회사 이름에도 젤리가 들어가고, 마스코트이기도 하잖아요.
사실 창업한 것도 젤리 때문이었어요. 개와 함께 출퇴근할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이럴 바엔 차라리 창업을 하기로 한 거죠. 혼자 집에만 있으면 너무 가슴이 아파서요.

동식물과 함께 사는 게 인생 모토라고 들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대에는 지금과 다르게 살았어요. 서울에서 록밴드도 하고, 머리도 빨간색이나 주황색으로 염색하고, 화려한 거 좋아하고. 그런데 서서히 도시가 지치더라고요. 예전부터 동식물을 좋아하고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30대가 되면서 더 변한 것 같아요. 지금은 미니멀하게, 자연과 가깝게 사는 게 좋아요. 이곳에서 살면 사람에게 별로 치이지 않아도 되고, 자연스럽게 상처받을 일도 줄어들거든요.

젤리와는 어떻게 만났나요?
여자 친구가 서울에서 사는데, 도시 생활에 힘겨워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반려동물을 키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저는 개와 오래 살았고, 그 경험으로 인생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저는 이전에 유기견과 살았는데, 젤리는 여자 친구가 분양하는 곳에서 데려왔어요. 둘이 잘 지내다가 여자 친구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젤리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져 제가 맡아준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계속 저와 함께 살고 있네요.(웃음)

젤리는 어떤 성격인가요? 지금 보니 호기심 많으면서도 새침해 보이는데요.
에너지 넘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 하는 애죠. 어릴 땐 안 그랬는데, 지금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조금 심해요. 늘 사무실에 같이 다니면서 어릴 때부터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아요.




최근에 이곳 주택으로 이사했죠? 전에는 원룸에 살았다고 들었어요.
정말 정말 좁은 원룸에서 살았어요. 지금 이사 온 집이 혼자 살던 집 중 제일 넓죠. 사실 제가 젤리와 최대한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집에만 있는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산책을 나가지 않고 집에 있으면 얘가 계속 한숨을 쉬더라고요. 지루함이 섞인 소리인 것 같다고 할까요. 좁은 데 가둬놓은 느낌이 들어서 미안했고, 늘 정원이 있는 주택에서 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이 동네 근처가 전체적으로 집값이 떨어져 이사 오게 됐어요.

동네 가운데에 옛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지가 크게 들어서 있어요. 어떤 동네인가요?
서둔동은 수원에서 가장 낙후된 곳 중 하나예요. 지금은 학교로 운영하지 않고 ‘경기상상캠퍼스’라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제 사무실도 학교 안에 있는데, 캠퍼스가 거의 숲이나 다름없어요. 산책하기도 좋고, 주변 이웃도 거의 어르신이라 좋아요. 아마 이 동네에서 제가 제일 어릴 거예요. (웃음)

이 집을 샀다고 들었어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요.
계속 매물을 보다가 모은 돈을 모두 쏟아부었죠. 대출과 부모님의 도움도 받고요. 이곳이 재개발 예정 지역이라 투기 목적으로 구매한 분이 많은데, 재개발이 취소되면서 저렴하게 매물이 나왔거든요. 운이 좋았죠. 그리고 이 동네에서 살던 분이 돌아가시면 보통 자녀가 집을 상속받는데, 자녀들이 이 동네로 와서 사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대부분 매매하는 편이거든요. 빈집도 많아요.

오래된 주택 같은데, 공사할 일이 꽤 있었겠어요?
이 집이 40년 되었어요. 1층은 대피소라 창고로만 쓰고 있어서 생활은 모두 2층에서 하죠. 아마 옛날에는 건물을 설계할 때 필수로 갖춰야 하는 요소였던 것 같아요. 근처 주택에도 모두 대피소가 있는데 예전에는 이 공간에 하숙생을 받기도 했다더라고요. 공사는 거의 혼자 했는데, 그래서 허술한 게 많아요. 딱 봐도 뭔가 완성도가 높진 않죠?(웃음) 벽지도 한 4개월 걸쳐 떼어내고, 주방 상부장도 제거하고, 바닥도 에폭시로 시공하고, 벽도 트고…. 집수리할 땐 본업에 충실하지 못했는데, 사실 언제 또 이런 일을 해보겠나 싶더라고요. 자기 집을 사서 고친다는 게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나름 재미있었어요.

원래 집 구조에서 가장 크게 달라지거나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방도 하나 더 있었고, 거실에도 가벽이 있었는데 공사하면서 다 허물었어요. 혼자 사는데 방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젤리가 넓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거든요.




이사 후 젤리가 느끼는 차이도 클 것 같아요. 이제 한숨은 안 쉬죠?
네, 젤리가 너무 좋아해요. 현관에 해가 잘 들어서, 그쪽에 누워 있는 것도 좋아하고 계단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자주 구경하고요. 그리고 이사 온 후로 배변도 꼭 밖에 나가서 해요. 현관문에 강아지가 직접 드나들 수 있는 펫 도어를 설치하고 싶었는데, 국내에서는 판매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늘 저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제가 좀 힘들어요.(웃음)

전세나 월세로 원룸에서 살 때는 집을 구하고, 이사하는 게 꽤 까다로운 일이었을 것 같아요. 반려동물 가구를 선호하는 집주인은 거의 없으니까요.
집주인뿐만 아니라 부동산 중개업자도 꺼리는 분이 많았어요. 그래도 저는 숨긴 적은 없어요. 대신 젤리가 거의 짖지 않는 편이라 집 구할 때 데려가서 보여드리곤 했죠. 이렇게 안 짖는다.(웃음) 계약할 때는 반려동물 거주 조건에 대한 특약도 넣었고요.

이 집으로 이사 와서 가장 좋은 순간은 언제예요?
주말 아침에 햇빛 받으며 계단에서 멍때리고 앉아 있을 때? 그러면 젤리가 제 옆에 와서 앉아요. 그때가 제일 행복해요.





집에 가장 많은 게 아마 식물일 것 같은데요, 돌보는 일이 쉽지는 않죠?
일반적으로 식물을 돌보는 게 더 수월할 것 같지만, 의외로 손이 많이 가요. 식물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 다르게 관리해줘야 하거든요. 관심이나 애정도 동물만큼 필요하고요. 사실 식물을 더 많이 들이고 싶었는데, 얘들도 책임감이 필요한 생명이라고 생각해 이 정도만 돌보고 있어요.

저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은 동물도 잘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무언가 하나를 잘 돌볼 줄 안다는 건 모두 연결되는 것 같아요.
맞아요. 단지 외롭다는 이유로 동물을 들이는 사람도 많잖아요. 동물을 키우기에 앞서 식물로 먼저 대안을 찾아봤으면 싶기도 하고요. 집에서 식물 키우는 사람은 의외로 많이 없거든요.

사실 식물이 죽는다는 게 점점 무서워지더라고요. 아무리 작은 죽음이라도 죽음은 죽음이니까요. 여러 식물을 키우면서 얻은 노하우가 있나요?
주로 빛이나 수분 공급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아이스 팩을 활용하는 거예요. 음식을 배달시키거나 인터넷으로 장을 보면 종종 아이스 팩이 오잖아요. 집을 멀리 비울 일이 있을 때는 아이스 팩을 뜯어서 그 재료를 흙에 섞어준 후 물을 주세요. 아이스 팩 재료는 간단하게 기저귀에 들어가는 흡수제라고 보면 되는데, 물을 오래 머금고 있거든요. 배합을 적절히 하면 일주일은 버티더라고요. 다만 그렇게 물을 주면 식물이 성장하지 않아요. 사막에서 조금씩 물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거든요.



누군가와 함께 살면 규칙이 생기잖아요. 반려동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지훈 씨와 젤리가 반복하는 일상의 루틴이 있나요?
일어나면 우선 문을 열어주고요, 음악 틀어놓고 청소한 후 산책 나가고, 들어와서 일하다 산책 나가고 그러죠. 산책을 정말 많이 가요. 하루에 열 번?(웃음) 그래서 전 여행도 거의 안 가고, 친구도 잘 안 만나요.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웬만하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죠.

일상을 거의 젤리에게 맞추는 거네요. 혹시 불편하거나 억울하지는 않나요?
네, 그럴 때도 있죠. 하지만 제 인생에서 1순위는 지금 젤리니까요. 사실 저는 괜찮은데 주변 사람들이 조금 힘들어해요. 특히 여자 친구는 종종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데, 저는 “그럼 젤리는 어떻게 해?”로 일관하니까요. 그래도 얼마 전에 반려동물과 함께 숙박이 가능한 곳을 찾아서 젤리와 함께 춘천에 다녀왔어요. 젤리와 가장 길게 떨어져본 것이 거의 9시간 정도였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성격이 안 좋아진 건가 싶기도 하고.(웃음) 저는 ‘너 하고 싶은 건 다 하라’는 주의거든요.

개와 함께 살면서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그 변화가 지훈 씨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었는지 궁금해요.
대학교 생명공학부에 입학한 후에는 동물과 식물을 모두 다뤘어요. 수업 시간에 동물실험을 했는데, 실험 후 처분 과정이 윤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더라고요. 어떤 절차나 규정 없이 쓰레기 버리듯이 하는 게 정말 충격이었어요. 쥐 실험한 후 동물 쪽으로는 전공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 대학원은 농업, 식물 쪽으로 가게 되었어요. 지금은 이렇게 관련 사업을 하고 있고요. 사실 저는 동물실험을 회피한 거지만,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못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관련한 캠페인도 하고 싶어요.

누군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삶을 선택했을 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웬만하면 하지 말라고 해요. 왜냐하면 주변에서 저만큼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을 못 봤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저도 가끔은 힘들거든요. 개인의 삶에서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분양받을 때 법적인 제도나 자격시험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누구나 키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자격시험을 치러야 하면 저도 통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웃음)


Conditions

지역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구조 2층 단독주택
면적 약 70㎡(21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