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mark wordmark

logo logo

남의 집으로 여행 갈래요?

Shall We Travel to Someone’s House?

남의 집으로 여행 갈래요?

Editor.Jayeo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김수지 / 31세

작가 · 시샘책방 모임 운영자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동
구조 다세대주택 1층
면적  36.5m²(11평)
보증금 8500만원(전세)

 

Room History

고시원 월세 33만원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이 됐을 무렵부터 남의 집으로 놀러 간 기억도 까마득해졌다. 마치 현관문마다 ‘Do Not Disturb’라는 표찰이라도 걸려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김수지는 이 적막을 깨기 위해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거실 플랫폼 ‘남의집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부터다. 타인과의 불필요한 접촉을 최소화한 O2O 서비스 사이에서 여러 모임을 통해 사람과의 연결을 시도했다. 무장해제한 듯 활짝 열린 현관문에서 그가 뒤집어놓은 표찰을 읽을 수 있었다. ‘Welcome to My Home’.


   

   



‘남의집 프로젝트’를 통해 방구석 작당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집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나요?
제일 먼저 한 건 ‘방구석 플리마켓’이었어요. 퇴사하고 치앙마이에서 한 달가량 지낼 때 빈티지 소품을 파는 마켓만 주야장천 다녔거든요. 그때 산 것들을 집에 진열해서 플리마켓을 열었지요. 그 후에는 ‘방구석 콘서트’를 진행했고요. 저희 집 부엌과 응접실 사이에 중문이 하나 있는데, 그 기준으로 공간을 나눠보니 소극장 무대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지인한테 공연을 제안했고, 그렇게 작은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열었어요. 스물아홉 살 연말엔 서른으로 접어드는 긴장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또래와의 모임을 진행했고, 서른에는 30대에 접어든 소회를 공유하기 위해 12월 30일에 사람들을 초대했어요. 그 외에 그림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의 그림책방’과 이별을 겪은 이들을 위한 ‘헤어진 사람들’ 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은 ‘방구석 미술관’에서 우야다 작가님의 유쾌한 할머니 작품을 전시하고 있고요.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하든 기본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중심 키워드예요. 대화를 하다 보면 자기 발견을 경험하게 되거든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네요. 이 집에서 지낸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2년 조금 넘었어요. 그 전에는 고시원에서 살았어요. 취직 때문에 서울로 올라오긴 했는데, 집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막막해 그냥 회사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의 고시원에서 살았죠.

이곳으로 이사 올 때부터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을 계획한 건가요?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한 건 아니지만 은연중에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그림책을 모아왔는데, 그림책은 책등이 아니라 표지가 진짜 매력 포인트잖아요. 표지가 앞으로 보이도록 비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집을 책방처럼 꾸미고 나서 친구를 한두 명씩 초대했는데, 볼 사람은 다 본 거예요. 20대 후반 즈음 되니 문득 만나는 사람의 결이 다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만남은 늘 즐겁지만 이렇게 끝나버리기엔 너무 아쉬웠어요. 그때 마침 취향 공유 플랫폼인 ‘남의집 프로젝트’를 발견한 거죠. 호스트가 자기 집에서 특정 주제로 모임을 주선하면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참여 신청을 하는 거예요. ‘어제까지 남이었던 우리가 취향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친구가 되어 집에서 만난다’는 취지가 마음에 들었고, 저와 잘 맞아서 플랫폼의 힘을 빌리기로 했죠.




크지 않은 집인데 프로젝트에 따라 실내가 변신 로봇처럼 바뀌는 게 신기해요.
침실과 작업실 두 공간이 있는데 프로젝트에 따라 자유롭게 재구성하는 편이에요. 보통 플리마켓이나 전시를 할 때에는 침실을 바꾸고요, 콘서트 때는 중문을 뜯어서 응접실과 부엌을 연결해요. ‘시샘책방’도 작업실에서 진행하고요. 사실 그 전엔 공간 기획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어요. 지금까지 살아본 곳이라고는 기숙사나 자취방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그림이 한 번에 그려지지는 않지만 천천히 공간을 채워나가는 편이에요. 물건을 놓아보지 않고는 상상이 안 가니까 일단 사서 배치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당근마켓에 팔아버리죠.(웃음) 침대도 큰 걸로 놨다가 안 어울려서 다시 팔아버렸어요.

오, 과감하네요.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작은 집이지만 조각조각 공간마다 쓰임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공간을 꾸릴 때 가장 먼저 하는 건 프로젝트 방향을 떠올리는 거예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제 손에 익은 것들을 최상의 조합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질문을 계속해서 떠올려요. 하고 싶은 걸 어떻게 꾸릴까, 사람들이 올 때 공간의 합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하면서요.

‘남의집 프로젝트’ 호스트로서 느낀 장단점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장점은 좋은 사람들과 연결된다는 거예요. 취향 공유 플랫폼을 안다는 건 그 자체로 문화 콘텐츠와 트렌드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타인과 소통하는 데 두려움이 없고, 두려움이 있더라도 이제는 시도해보고 싶은 긍정적 마음가짐을 가진 거죠. 모임을 진행할 때 호스트만 잘한다고 원활하게 이뤄지지는 않거든요. 참석한 사람들끼리의 에너지가 분위기를 완성하는 데 크게 작용하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서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할 때 가장 기뻐요.

반면에 어려운 점은요?
시스템적으로 불안정한 것들은 계속해서 개선되고 있어요. 플랫폼 담당자도 이런 부분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시고요. 다만 아직까지 플랫폼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고, 또 시간과 비용을 써서 모임에 오려는 사람의 파이 자체도 크지 않기 때문에 제가 집을 연다고 해서 무조건 사람이 온다고 확신하기는 어려워요. 저도 항상 모집에 대한 긴장감이 있거든요. 사람들에게 남의 집으로 놀러간다는 컨셉이 낯설 수 있기 때문에 호스트도 사람들이 기꺼이 놀러 올 만큼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디지털이 맺어준 인간관계는 일정 거리 이상 더 가까워질 수 없다며 신뢰하지 않기도 해요. 플랫폼을 통해 모임을 중개하는 운영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취향으로 만난 사람들은 서로 좋은 친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런 프로그램 참여자 연령대가 보통 20대 후반 이상이거든요. 그러면 대부분 자신에게 안전 기지 같은 관계를 이미 갖고 있고, 현실적으로 바쁘고 피로한 일상에서 여분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힘든 것 같아요. 저에게도 좋은 시간을 보낸 것과 별개로 약간의 공허함이 찾아온 적이 있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나누는 것은 늘 즐겁지만, 꼭 그것만이 제 삶을 채우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한 공허함이 결국 디지털에서 맺어지는 관계를 얕게 만드는 걸까요?
하지만 이런 모임으로 맺은 관계의 깊이가 얕다고만 할 수는 없어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에게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말들이 많잖아요. 오히려 같은 취미와 관심사로 만난 사람들은 중심 공감대가 일치하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자리라 하더라도 깊은 이야기를 더 쉽게 나눌 수 있어요. 어떤 이야기를 얼마큼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지, 이 관계가 어디서 시작했고 얼마큼 알고 지냈느냐가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남의집 프로젝트’ 호스트 이외에 어떤 일을 하세요?
퇴사하고 나서 이제 막 1년이 지났어요. 직장 생활을 다시 하는 것보다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찾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생계용 아르바이트를 하고는 있는데, 제가 하고 싶은 일 외에는 머리와 마음을 크게 쓰고 싶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수영장 매니저와 아이들과 놀아주는 베이비시터를 하고 있고요. 일 외에 정서적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물론 저 스스로는 이 결정에 맥락을 만들고 선택한 것이라 의구심이 없지만, 아주 가끔씩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가 있긴 해요. 이게 괜찮은 건가, 하면서요.

불쑥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죠.
그래도 최소의 생계비를 벌 수 있는 일을 하되, 저만의 콘텐츠에 집중하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요.




내 집, 내 방을 임대하거나 공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익을 얻는 걸 보통 ‘방테크’라고 해요. 실제로 모임 주선 방테크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나요?
다른 호스트는 어떻게 진행하는지 몰라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정리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일반적인 알바보다는 낫다. 하지만 직업으로 갖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프로그램 기획, 모집, 운영에 눈에 보이지 않는 품이 들다 보니 노력 대비 수익성이 큰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내가 어떤 직업을 선택하기 전에 테스트해보기엔 아주 좋은 것 같아요. 만약 직업으로 모임을 운영하고 싶거나, 모임을 자주 여는 상점을 운영하고 싶다면 실제로 내가 이 업무에 탁월한지 미리 점검해볼 수 있는 거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과 매일 일로서 하는 건 아주 다른 문제잖아요. 미리 해보기에 아주 최적화한 플랫폼이에요.

일면식 없는 누군가를 집에 들이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에요. 안전 문제도 걱정되고요.
처음에는 친구들도 안전에 관해 다들 걱정했어요. 근데 제가 이렇게 ‘남의집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는 건 돌이켜보면 부모님 덕분인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 부모님이 농장을 하셨거든요. 예쁜 농장이었어요. 그래서 길 가던 사람들이 “여기 뭐 하는 데예요?” 하면서 막 들어왔어요. 그러면 부모님이 그분들한테 차도 주고 밥도 주고, 이야기도 나눴어요. 이런 경험이 쌓여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데 대한 경계심이 상대적으로 없는 편인 것 같아요. 그 외에 플랫폼을 통해 신청자의 이름, 나이, 하는 일, 참석 이유 등을 미리 알 수 있어서 안전성이 확보되기도 해요.




‘#시샘방명록’에서 이 집에 찾아온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어요. 사실 모임 주선 서비스는 후기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불특정 이용자에게 후기를 받는 건 살 떨리는 일일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신경 쓰이죠. 귀가하기 전에 후기를 남겨달라는 요청을 드려요. 그런 말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 차이가 많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꼭 한 번씩 요청을 드리죠. 하지만 내용을 강요할 수는 없어요. 저마다 느끼는 게 다르니까요. 그래서 좋게 써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써줄 수 있는지만 물어봐요. 무엇보다 그냥 좋은 시간 자체를 만들려고 노력하죠.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니까요.

신의 관점에서 바라본다고 상상하면 사람들이 계속해서 접촉을 시도하는 게 흥미로운 현상처럼 보일 것 같아요. 비용을 들여서라도 만나서 이야길 나누려고 하니까요.
사람이 소속감에 대한 욕구를 갖거나 타인과 접촉을 시도하는 행위 자체는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기존 사회에서 맺은 관계가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생활 반경과 이웃 그리고 가족 등에서 이뤄졌다면, 요즘엔 스스로 선택해서 맺는 관계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비용을 들여서라도, 시간을 써서라도, 멀리 찾아가서라도 자기가 정말 원하는 관계에 발을 들이는 거예요. 어떤 면에서는 이전에 쓰지 않던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한편으론 이런 기회비용을 투자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관계망에 더 빠르고 깊게 다가설 수 있고, 만족도도 높다는 점에서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것 같아요.

‘시샘책방’을 설명하는 글에 그림책 120권을 구비했다는 말이 있어요. 실제로 그보다 훨씬 많은 장서를 가진 애호가와 전문가가 있고, 더 많은 그림책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그림책방도 있잖아요. 처음 ‘시샘책방’을 열 때 ‘내가 이런 걸 해도 될까?’라는 걱정은 들지 않았나요?
그게 ‘남의집 프로젝트’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해요. 내가 전문가가 아니고 기반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호스트가 되어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는 거예요. ‘나는 이걸 정말 좋아해’, ‘나는 이게 언제나 즐거워’라는 생각이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거죠. 그게 설득력을 갖도록 도와주는 게 ‘남의집 프로젝트’고요. 취향이 이유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 시간들이 또 저만의 경력으로 쌓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샘책방’은 용기를 내 현관문을 열었으니까요!
제 방식이 모든 사람이 추구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집은 집이어야 하잖아요. 저는 제가 가진 게 집뿐이고 이걸 활용하길 좋아하는 개방적인 사람이어서 괜찮은 거예요. 그런 저조차 이 집에서 제 개인 소유라는 개념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저 침실만 봐도 지인들이 와서 “너 어디서 자?” 하고 묻거든요. 제가 진짜 쉴 수 있는 땅은 없다는 느낌도 들고요. 그런 게 저한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서 저는 불편하지 않을 뿐이에요.

기술로 관계망이 넓어지면서 남의 집 거실 여행도 할 수 있게 됐는데요, O2O 시대에 시샘 님에게 ‘기술’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기술 덕분에 더욱 효율적이고 빠르게,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일을 떠올릴 수 있는 것 같아요. 프라이팬 같은 거죠. 불만 있어도 고기는 익힐 수 있어요. 하지만 프라이팬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고기를 익히는 것을 넘어 얼마큼 익힐까, 어떤 방식으로 요리할까를 고민하게 되는 거죠. 어떻게든 고기는 먹겠지만 그걸 조리하는 다양한 방식을 떠올리는 게 다른 것 같아요. 집이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사람들과 연결되고 내 꿈을 실현하는 장소로 확장되기도 하니까요.

‘남의집 프로젝트’를 한 뒤 ‘나의 집’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을까요?
‘남의집 프로젝트’를 통해 집의 의미가 바뀌었다기보다는 집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에 ‘남의집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맨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하나하나 선택하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공간과 가구를 소유해본 적이 없어서 이게 어울리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거든요. 근데 일련의 선택을 계속해나가면서 점점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마음 한편으론 틀려도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을 초대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도 이 경험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길 때 나만의 장소가 있으니 덜 망설이게 되고요. 저한테 집은 나를 잘 알고, 무엇이든 일단 해보라고 격려해주는 친구 같아요. ‘사는 공간’을 넘어 ‘시도하는 공간’으로 바라보면서 용기가 차곡차곡 쌓인 거죠.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동
구조 다세대주택 1층
면적  36.5m²(11평)
보증금 8500만원(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