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mark wordmark

logo logo

반지하, 그리고 베를린

Basement Floor, And Berlin

반지하, 그리고 베를린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31세 / 김나훔

작가


Conditions

지역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구조 투룸 아파트
면적  60㎡(18평)
매매 5500만 원

 

Room History

 

20세 서울시 강북구 미아동 투룸 반지하 (보증금 500만 원, 월세 30만 원)
31세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투룸 아파트 (매매 5500만 원)

 

 

어느 날 단풍 씨앗이 날아가는 장면을 보았다. 헬리콥터 날개 같은 한 쌍의 잎이 동그란 씨앗을 장착한 채 바람에 흩날려 빙글빙글 돌았다.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움직임. 나는 강릉에 사는 김나훔을 만나고 그 장면을 떠올렸다. 마음이 가는 대로, 서울-베를린-강원도로 주거지를 옮기며 그림을 그렸더니 그쪽으로 물길이 열렸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조금은 막연하게 사는 사람을 보면 도리어 안전한 비행을 떠올린다. 버티기 위한 힘을 쭉 빼고 그저 바람이 불 때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진정한 정착은 밧줄을 묶는 대신 푸는 것 아닐까?



우선 개인전 축하드려요. 이제 보름 정도가 지났겠네요.
딱 2주 지났어요. 광명의 ‘호반 아트리움’이라는 곳에서 전시했는데, 그 동네는 이제 막 주상복합건물이 생기는 모양이에요. 강릉에 사는 제겐 이동성이 좋지 않았지만 공간이 쾌적해서 괜찮았어요. 음, 그런데 제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인터뷰는 많이 했는데, 이런 주제의 인터뷰는 처음이어서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상업적인 일을 5~6년 정도 하면서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유쾌한 작업을 많이 했거든요. 지금 방에 보이는 편안한 그림보다는 한눈에 확 읽히는 에티켓 포스터 같은 거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유의 작업만 하게 됐고, 개인적인 순수 작업은 못 하게 됐어요. 돈은 벌었지만 마음에 병이 들면서 더 이상 그림을 못 그리겠더라고요. 상업적인 일을 끊고 1년 동안 베를린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는데, 다행히 환기가 됐는지 병이 좀 나으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좀 더 유연한 그림체로 한 번 더 생각하게끔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이번 전시는 데뷔전이라고 할 만큼 바뀐 저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어요.

그림을 시작할 때 다른 일과 병행했다고 들었어요.
네, 저는 미술이 아니라 베이커리 전공이었기 때문에 훈련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처음엔 PC방 알바도 알아봤는데 다 떨어졌어요.(웃음) 그림을 그려야 해서 퇴근 시간을 존중해달라고 하니까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여겼나 봐요. 아닐 수도 있지만 그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견디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러다가 충무로 인쇄소 사장님이 제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주셔서 5~6년간 함께 일했죠.

주거를 다루는 매체로서 흥미로웠던 점은 나훔 씨가 전시를 알리는 글에서 거처에 관한 얘길 길게 언급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살아온 집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요?
처음엔 누나와 미아동 반지하에서 생활했어요. 누나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구한 집인데, 저는 학교 문제 때문에 옷방에 얹혀살았어요. 반지하에서도 하층민이라고 농담을 했죠.(웃음) 누나가 결혼하고 저도 취업을 하면서 바통 터치를 받아 총 10년간 생활했어요. 반지하임에도 빛이 되게 잘 들어왔고, 창문도 길가가 아닌 텃밭 쪽으로 나 있어서 좋았어요. 나름대로 통풍도 잘되는 편이었고요. 집세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이었는데 셀프로 5만 원을 올렸어요. 주인 할머니∙할아버지가 정말 좋은 분이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 월세를 올리지 않으셔서요. 지금 시대에 25만 원은 너무 말이 안 되잖아요.

상태가 좋은 반지하에서 살았군요.
그런데 우울증이 시작되면서 그 괜찮았던 반지하가 감옥처럼 느껴졌어요. 눈앞의 쇠창살이 나를 보호하는 건지 가둬놓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였죠.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저는 갇혀 있는 게 맞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아늑한 곳이지만 철저히 차단되기도 한 곳인 거예요. 도피하듯 베를린으로 떠나면서 가족한테도 언제 올지 제대로 말하지 않았어요. 다만 가족의 염려를 좀 덜어주기 위해 반지하 집을 빼진 않았어요. 금방 돌아올 것처럼.



그럼 왕복이 아닌 편도 티켓을 끊었을 텐데, 무엇이 나훔 씨를 한국으로 돌아오게 했나요?
워킹홀리데이로 가면 꼭 돌아오는 티켓이 필요하다고 해서 비행기 안에서 티켓을 구입한 다음, 내리자마자 바로 취소했어요. 일단 베를린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미술 비전공자라는 게 저의 콤플렉스이자 프라이드였기 때문에 그곳 학생들은 어떤 식으로 교육받고 사고하는지 궁금했거든요. 어학원을 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지구 반대편에 사는 이들의 사고가 저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죠. 거기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더라고요. 전혀 안 팔릴 것 같은 그림을 길바닥에 놓고 3000 원에 팔면서 운이 좋으면 담배 한 갑은 살 수 있는 거예요. 그런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고 싶은 게 늘어났어요. 에세이책, 그림책을 내고 싶고 전시도 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한국에 돌아가도 되겠다 싶었죠.

그러나 나훔 씨의 마음과 달리 한국의 상황은 여전했을 거잖아요.
맞아요. 베를린에 있으면서도 서울에 집이 그대로 있다는 게 슬펐던 것 같아요. 서울 집만 떠올리면 트라우마처럼 느껴졌어요. 반대로 내가 너무 무책임하게 떠나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 식물은 극락조라고 하는데, 방치된 채로 거의 죽은 줄 알았죠. 그런데 돌아와서 보살피니까 다시 살아나더라고요. 그냥 그런 거예요. 살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거죠.

만약 베를린에 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 것 같아요?
가정해보긴 했죠. 반지하를 벗어나 지상에서 살려고 한다면? 결혼을 한다거나 집을 사기 위해선 얼마가 있어야 하지? 모아놓은 돈이 이렇게 있는데, 이 상황을 바꾸려면 내가 무슨 짓을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주관이 아닌 둘러싸인 것들에 휩쓸리며 살았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반지하에 살면서 어느 정도 피해 의식도 있었던 것 같고요. 주변에 푸르지오 같은 높은 건물이 올라가면서 해도 안 들고…. 그렇게 도피하듯 떠났는데 결과적으로 베를린 생활이 도움이 됐어요. 해외에서도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고 점점 일이 들어오니까 인터넷만 되면 어디서든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돌아온 후 생애 처음으로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죠. 디딤돌, 그거 있잖아요.

이 집을 구하기 전에 고성에서도 한 달 살았잖아요.
베를린엔 바다가 없거든요. 베를린에서도 자주 이사를 다녔는데, 눈떴을 때 몇 분 동안 낯선 느낌이 들잖아요. 그때 비행기 소리를 파도 소리로 듣고 제가 행복해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춘기를 속초에서 보낸 탓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민박이라도 좋으니 바다 가까이에 있는 집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죠. 고성의 그 민박은 정말 코앞에 바다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살아보니 ‘아, 잠깐이 좋구나’, ‘2주면 예쁜 마음으로 헤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염분이 많으니까 머리가 금방 엉겨 붙고, 건물도 금방 부식되고, 무엇보다 파도 소리가 24시간 들린다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힘든 일이더라고요. 실컷 담가본 거죠. 후회는 없어요.



여기 강릉 집은 어떤 점이 좋아요?
앞뒤로 하늘과 소나무가 잘 보이고요, 바다도 15분 정도면 갈 수 있어서 좋아요. 집을 많이 보러 다니려고 했는데, 막상 이 집을 보니 다른 곳은 안 보이더라고요. 대부분 1억 원 가까이 되는데 여긴 워낙 저렴하기도 했고 딱 느낌이 왔어요. 아파트가 많이 낡았지만 작업할 환경만 잘 만들어놓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강릉에 있다가 서울에 가면 출퇴근하는 사람이 아닌 여행자로서 보니까 신선한 느낌이 있어요. 서울로 진입할 때의 분주함, 강릉으로 돌아올 때의 고요함 모두 좋아요.

거처를 여기저기 옮기면서 불안감은 없었나요?
처음엔 불안하기도 했지만 나중엔 재밌더라고요. 그런데 따지자면 이사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수유에서 10년간 살았고, 고성에선 여행자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아, 베를린에선 집을 네 번 정도 옮겼는데, 캐리어를 드르륵드르륵 끌면서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는 생각과 함께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사는 게 원래 이렇게 움직이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독일 사람이 집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던가요?
우선 환경이나 정책부터 한국과 많이 다르잖아요. 워낙 땅이 넓기도 하고 세금도 많이 내서 노부부도 집을 사지 않고 월세로 산대요. 어떤 사람은 나무를 모아서 집을 짓기도 하고요. 그들에겐 타고난 환경이 있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도 저변에 깔린 환경이 풍부했다면 적어도 주거에 대한 집착은 덜하지 않았을까요?

예전에 저는 어떤 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것 자체가 무섭게 느껴졌어요. 지금은 빚을 내서 자산(집, 자동차)을 만드는 상황이 좀 의아하고요.
이 집을 구할 땐 반 정도 대출을 받았고, 그 전엔 학자금 대출 2000만 원 정도가 있었는데, 산이 이렇게 눈앞에 있는 느낌이었죠. 친구들끼리 얼마 모았는지 얘기할 때도 저는 큰 산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 아예 안 한다고 답했어요. 그런데 프리랜서 일을 하며 갚다 보니까 테트리스 게임을 하듯 좀 재밌기도 하더라고요. 다 갚았을 땐 허탈함도 있었고요. 이제 나 뭐 해야 하지? 집을 사야 하나? 집은 얼만데? 몇 억? 그럼 나는 그걸 얼마 만에 벌 수 있지? 만약 내가 집을 사서 그곳에 들어가면 또 허탈하려나? 이게 뭐지? 이런 의문이 계속 들었어요.

그렇다면 연쇄 고리 같은 이 문제는 누가, 어떻게 제기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사회문제는 비슷한 구조로 발생한다고 보거든요. 노동자에게 더 싼값의 노동력을 요구하는 기업과 집값 상승을 위해 발버둥 치는 건물주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회 비판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그런데 요즘은 나의 불편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면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누굴 위해 그림을 그리나 싶을 때가 있거든요. 유쾌하고 재밌는 그림은 생계유지에 도움이 되고, 편안한 그림은 집에 걸 수도 있는데, 이런 크리티컬한 그림은 소장이나 마케팅의 이유로 그리고 싶진 않아요. 온전히 저의 투쟁처럼 그리는 거죠. 시간이 지나 제 안에서도 변화가 생기니 강한 투쟁보다는 그냥 행동으로, 그러니까 살아가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부동산 말고도 모든 일에 해당하는 것 같아요. 그게 다 정서의 문제 아닐까 싶어요. 집, 차, 패션, 말, 생각 모든 것요. 그 정신의 스위치만 살짝 켜지면 줄줄이 바꿔나갈 수 있는데 말이죠. 제가 지금 대화를 하면서 인터뷰하길 잘했다고 느끼는 건 저 같은 사람을 보여줌으로써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일반적인 틀에 박힌 삶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한 사람에게라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느낀다면 우리가 어떤 몸부림을 쳐도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살지?’ 하는 시선은 보내지 않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해요.



나훔 씨는 낯섦의 순간이 여행의 감각과 비슷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낯섦을 발견하기 위해 매번 떠날 순 없잖아요. 이 집에서 낯섦을 유지하거나 혹은 찾기 위해 어떻게 하나요?
제가 가끔 집을 비울 때 에어비앤비로 사용하려고 숙소 등록을 했는데요, 휴가 시즌과 맞물려 갑자기 예약이 밀려오는 거예요. 그걸 안 받으면 페널티를 물거든요. 그래서 일단 예약을 결정한 후 청소하고 집을 싹 정돈하죠. 사실 청소를 잘 안 하거든요.(웃음) 그렇게 손님을 받으면 제가 비치해둔 걸 사람들이 읽고 마시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재밌게 느껴져요. 누군가를 초대함으로써 생활자인 저에게 여행자의 시선이 전달되는 것도 흥미롭고요. 출장 겸 볼일이 있을 때 서울에서 며칠씩 지내는데, 자연스럽게 집과 저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생겨서 좋은 것 같아요. 오랜만에 돌아오면 또 여기가 여행지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작품에서도 낯설게 보기 위한 장치가 드러나는 것 같아요. 가령, 주차장에 등장하는 커다란 수박처럼요.
저는 낯섦이 신선하게 느껴졌으면 좋겠거든요. 베를린에 있을 때부터 사진 위에 낙서를 많이 했는데, 베를린이라는 장소 자체가 낯설기도 하지만 그 위에 낙서를 하니까 그림으로서 낯섦이 생기더라고요. 만약 누군가 제 그림을 보고 그 공간에 갔는데 낙서가 없더라도 상상할 거리가 있잖아요. 사실 그건 아이들이 더 잘 알 텐데, 어른이 되면서 현실 안에서 상상을 깎아내리는 게 참 아쉬워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면서 도리어 뒤로 갈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여러 그림을 보면서 블랙코미디 영화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국의 어떤 환경이 나훔 씨의 시각을 단련시켰을까요?
불만요. 그게 저한테는 콤플렉스이면서도 아쉬움이자 어떤 애정이었을 거예요. 어릴 때부터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미술 수업은 어쩌다 한 번 있고 나머지는 수학, 과학 이런 과목뿐이었죠. 그 시간 동안 제가 멍청이 취급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 선생님이 칠판 앞에서 문제를 풀어보라고 했는데, 모르는 문제였어요. 그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면서 현기증이 나던 게 생생히 기억나요. 그림을 그리면서부터는 ‘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됐잖아!’ 하고 깨닫더라고요. 못하는 걸 계속 주입받는 환경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요즘 식물을 가꾸는 데 시간을 보내는 것 같던데, 이전 집에서도 식물을 키웠나요?
베를린으로 가기 전에 이 식물을 처음 산 거예요. 자연스럽게 사람이 그렇게 되더라고요. 독일은 겨울에 4시간만 해가 들기도 하는데, 저는 그게 좋았어요. 지금 내 침울함을 받아줄 딱 좋은 도시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쪽 사람들끼리 하는 말이 식물을 하나둘씩 들이면 ‘너도 그만큼 외롭구나’, ‘이제 식물의 필요성을 느끼는구나’ 한대요. 저는 이제야 식물한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아요. 얘들이 자란 걸 보면 뿌듯하고, 죽으면 너무 슬프고.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열심히 화단을 가꾸는 느낌을 이해하게 됐어요. 아직 초보지만요.

마지막으로, 이 지역에서 혹은 집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네, 강릉을 주제로 꾸준히 작업해보고 싶어요. 많은 사람이 지역의 특징적 정서를 느꼈으면 하거든요. 우리가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에 대해 스토리텔링을 해나가면, 자연스럽게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은 ‘여기에서 뭐가 나올 것 같아!’ 하는 상상을 하고, 어른들은 생각할 거리를 얻을 수 있겠죠. 저는 항상 어떻게 하면 우리가 아이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해요.


Conditions

지역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구조 투룸 아파트
면적  60㎡(18평)
매매 550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