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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에 없던 집

An Unplanned House

계획에 없던 집

Editor.Hyem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신인아

35세, 그래픽 디자이너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구조 다세대 투룸
면적 약 49.5㎡(15평)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45만 원

Room History

16세(호주) 보증금 없음, 주세 300AUD, 하숙집
20세(호주) 보증금 1000AUD, 주세 230AUD, 1층 원룸
22세(이탈리아) 보증금 600EUR, 월세 450EUR, 4층 투룸 셰어
23세(호주) 보증금 1000AUD, 주세 250AUD, 3층 원룸
28세(성북동) 보증금 5000만 원, 월세 20만 원, 옥탑방
32세(성북동)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45만 원, 다세대주택 투룸


자취 경력 17년째. 중학생 때 홀로 먼 나라로 유학을 떠나 10대와 20대 시절을 타향에서 살며 네 번 이사를 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30대를 서울에서 보내며 또다시 세 번째 집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하는 사람. 누군가는 이를 두고 무엇을 향해 가는 삶인지 궁금해할 것이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 물을 수 있겠지만, 자신은 그저 큰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고, 원래 계획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 생각해보면 큰 계획 없이도 우리 삶은 굴러가고, 삶이 이끄는 대로 살다 보면 내가 어디쯤 가 있을지 상상해보는 일도 썩 나쁘지만은 않다. 불안해하기보다 그 순간마다 어떻게 자기다움을 지킬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일. 비록 당분간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살 집을 찾고, 거처를 옮기고, 살아가는 동안 내 취향의 것으로 채우는 일도 그런 일 중 하나일 것이리라. 물론 계획엔 없었지만 말이다.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그래픽 디자이너 신인아입니다. ‘오늘의풍경’이라는 1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고요, 열여섯 살에 호주에서 독립 생활을 시작해 한국에는 6년 전에 왔어요. 지금은 성북동에서 반려묘 마크니와 둘이 살고 있어요.
 

열여섯이면 정말 어린 나이잖아요. 꽤 일찍 독립한 편인데, 어떻게 그리 이른 나이에 호주까지 가게 된 거예요?

제가 지방 소도시에서 나고 자랐거든요. 그때 저는 “HOT 오빠들 보러 서울 가고 싶다”란 말을 밥 먹듯 하던 평범한 여중생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너, 호주 갈래?”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희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셔서 집이 썩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어요. 엄마가 꽤 야망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내 자식들은 꼭 성공시키겠다. 성공시키려면 외국에 보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신 모양인데, 저는 그때 별생각 없이 “와, 서울도 아니고 호주라고? 그럼 외국인들하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거야?” 하면서 당장 가겠다고 했죠.(웃음) 그렇게 멋모르고 떠난 유학길이었어요.
 

처음 먼 타지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 어땠나요? 저 같으면 막막하고 외로워서 매일 울었을 것 같은데. 

글쎄요, 너무 오래전이라 제 기억이 왜곡된 것일 수도 있는데, 사실 그런 막막함이나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었던 거 같아요. 한국과는 모든 게 백팔십도 다른 그 나라 문화에 적응하고, 영어 배우기에 바빴던 것 같아요. 설레고 즐거웠던 기억이 더 많아요. 등하굣길에 매일같이 감자튀김 사 먹던 것도 기억나고….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원래부터 선천적으로 겁이 없고 독립심이 강한 인간이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정말 ‘프로자취러’ 맞네요. 그때는 어떤 집에 살았는지 궁금해요.

미성년일 때는 한인 가족의 하숙집에서 살았어요. 부모님도 저를 그렇게 보내놓고 내심 걱정하셨던지 무조건 한인 집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때는 사실 그게 좀 답답하기도 했어요. 한창 자유를 누리고 싶은 ‘틴에이저’였으니 나도 얼른 호주 사람과 살아보고도 싶고, 혼자서도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거든요. 그래서 스무 살 되고 대학 가자마자 그 집을 나왔죠. 그리고 호주 사람들이랑 셰어하우스에서 살아야지 했어요. 3층짜리 빅토리언 스타일에 마당도 있고 진짜 호주인들이 살 것 같은 집 있잖아요. 그런 곳도 셰어하우스로 살면 그렇게 비싸지 않거든요. 저도 그런 곳에서 친구들이랑 살아보고 싶다 했더니 아빠가 심하게 반대하셨어요. 남녀가 섞여 있다는 이유로요. 차라리 좀 더 집세가 비싸더라도 혼자 살 집을 구하라고 하셨죠. 결국 원룸 구해서 혼자 살기 시작했지요. 현지 친구들은 저보고 부자인가 보다 그랬고요.
 

아, 호주에서는 혼자 원룸에 사는 게 오히려 흔치 않은 일인가 봐요. 

호주에선 대부분 열아홉, 스무 살 되면 독립을 해요. 근데 그렇게 나와서 대부분은 셰어하우스에서 살죠. 셰어하우스는 보증금이 두 달 치 월세 정도라 아르바이트하면 감당할 만한 정도니까요. 우리나라처럼 보증금이 1000만 원 단위부터 시작해 무조건 부모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과는 다르죠. 그래서 저도 제 힘으로 돈 벌어서 살겠다고 했지만, 아빠가 셰어하우스 개념을 잘못 이해하신 덕분에(?) 부모님의 원조를 받아 혼자 살게 된 거예요. 사실 그렇게 온전히 혼자 살게 되니까 그것도 너무 좋더라고요.(웃음) 이후 이탈리아에서 잠깐 1년 정도 살 때 셰어하우스에서 살아봤고요. 다시 호주로 돌아와서 원룸에 살다가, 2011년 한국 들어와서는 줄곧 이 동네에서 이렇게 살고 있어요.



성북동에는 어떻게 오게 된 거예요?

저는 그전까지 한 번도 서울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아는 동네가 없었어요. 근데 한국에 돌아와서 취업하게 된 회사가 성북동이라 이곳에서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한 거죠. 의외로 성북동이 달동네가 있어서 저렴한 데는 엄청 저렴하더라고요. 사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친구들이 죄다 홍대 쪽에 있어서 그쪽으로 집을 알아봤는데, 제가 가진 돈으로는 그쪽에선 집이 너무 콩알만 한 거예요. 그래서 다시 성북동을 알아봤는데, 정말 구조가 특이한 집이 많았어요. 3층인데 1층 같은 곳도 있고요, 이 집처럼 언덕에 있어서 창밖으로 숲이 보이고 전망이 좋은 집들이 꽤 있어요. 집이 다 똑같고 답답한 대학가의 원룸촌이랑은 확실히 다르죠. 집들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아서 선택의 폭이 넓은 것 같아요. 여자 혼자 살기에 치안도 괜찮은 편이고요. 특히 이쪽 동네들은 대부분 현관문 열고 살거든요. 서울의 삭막한 느낌이랑은 좀 달라서 좋아해요.
 

꽤 많은 집을 거쳤는데, 집을 고르는 인아 씨만의 기준이 있나요?

여러 집에 살아보면서 기준이 하나씩 생긴 것 같아요. 호주에서 살던 원룸이 1층이었는데, 정말 잘 지은 집이었는데도 1층이다 보니 햇빛이 잘 안 들어오더라고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소리도 잘 들리고. 그래서 다음 집 구할 때는 채광 좋고 1층 아닌 집이 기준이 됐죠. 한국에 와서도 채광 좋은 집 중 저렴한 곳을 찾다 보니 옥탑에 살게 된 거죠. 햇빛도 잘 들고 좋았는데, 생각해보니 늘 원룸에서만 살았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집은 방이 좀 분리된 곳을 찾아보자 해서 이 집을 발견한 거였고요. 그리고 이 집을 나가게 되면 다음 집은… 음, 층고가 낮지 않은 집을 찾으려고 해요.
 

층고? 저한텐 되게 생소한 단어예요. 그런 것도 생각하는군요. 

네, 사실 제가 호주에서 살던 집들이 거의 다 층고가 높은 편이어서 그런지 층고가 낮으면 좀 답답하더라고요. 한국에 와서 집을 많이 보러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요즘 집들보다는 옛날 집들이 층고가 좀 높은 편이에요. 이 집도 사실 지금보다는 층고가 높았는데, 저번에 수도관 공사를 하면서 바닥이 한 뼘 정도 올라와서 좀 답답해진 느낌이에요.
 


이 집도 참 독특해요. 나무 벽과 천장이 있는 오래된 집인데, 이런 집을 찾아내는 안목도 그렇고, 인아 씨의 취향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로서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보통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은 것’으로 여기는 해외 디자이너의 작업을 많이들 얘기하잖아요. 근데 저는 오히려 한국에 와서부터 지금까지 매일 보는 거리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것 같아요. 오래된 간판이라든가, 독특한 건물이라든가. 붓글씨 쓰는 아저씨라든가, 걷다가 만나는 특이하고 이상한데 굉장히 한국적인 풍경 같은 것이 좋아요. 그래서 제 작업실을 을지로에 구하기도 했고, 제 디자인 작업도 그런 데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한국인은 오히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한국적 풍경을 잘 캐치해내는 것 같아요. 어쩌면 오래 이방인으로 살아온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 집을 고르게 된 것도 그런 맥락이었나요? 

맞아요. 1980년대 한국에서 유행하던 나무 벽으로 된 집이 제 눈에는 되게 예뻐 보였거든요. 물론 여러 조건이 맞은 것도 있겠지만, 만약 이 집이 이렇게 안 생겼다면 아마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인아 씨에게 집은 어떤 공간이에요? 

집은 무조건 편해야 하는 공간이죠. 근데 편하다는 게 몸만 편한 게 아니라, 내가 눈으로 보는 것도 편해야 하는 것 같아요. 예쁘고 좋은 게 눈에 걸려야 해요. 그래야 스트레스를 안 받거든요. 그게 꼭 좋고 비싼 것이라기보다는 내 눈에 좋고 마음에 드는 거면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집에서 나는 냄새도 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룸 스프레이에 꽂혀 있어요.(웃음)



마크니와는 언제부터 같이 살기 시작한 건가요?

같이 산 지는 5년 정도 됐어요. 유기묘 보호소에서 데려온 애예요. 사실 사진으로 처음 보고 정말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한눈에 반해서 찾아간 거였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마크니한텐 비밀이지만) 솔직히 말해 정말 못생긴 거예요.(웃음) 사진발이었어. 그래도 어쩌겠어요. 데려왔는데, 처음엔 좀 서먹서먹했죠. 물론 지금은 나의 사랑스러운 도련님, 귀염둥이지만.
 

혼자 오래 살다가 같이 사는 반려묘가 생기니 좀 덜 외로운가요?

사실 저는 외로워서 고양이를 키우려고 한 건 아니고, 우연한 기회에 키우게 된 거예요. 근데 요즘엔 가끔 힘들 때면 ‘아, 얼른 집에 가서 마크니 털 쓰다듬고 싶다’ 하는 생각을 해요. 아, 알고 보니 우리 마크니 털이 매우 독특하게 부드러운 거더라고요. 저렇게 털이 부드러운 고양이가 잘 없다고 하더라고요.

자기 자신만 챙기던 삶에서 챙길 존재가 하나 더 생긴 거잖아요. 동물도 사람만큼 손이 많이 간다고 하던데, 그런 부분에서 좀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요? 

사실 마크니는 두 살 성묘 때 데려온 거라 아기 고양이처럼 챙길 게 그리 많지는 않았어요. 다만 이 아이가 스트리트 출신이다 보니 주의해야 할 것이 좀 있었죠. 일단 밥에 대한 욕심이 어마어마했어요. 제한 급식을 안 하고 그냥 주면 24시간도 계속 먹는 애였어요. 그래서 제한 급식을 꼭 하는데,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일을 시작했더니 얘가 하루 종일 제 앞에 와서 밥 달라고 울더라고요. 야옹거리는 것도 차라리 일정하면 모르겠는데 불규칙하고.(웃음) 그렇다고 밥을 계속 줄 수도 없고,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결국 제가 작업실을 얻어서 나가게 됐지요.

아, 작업실을 구한 게 마크니 때문이었다니. 마크니가 의외의 부분까지 꽤 영향을 미치고 있었네요. 

아침에도 밥 달라고 엄청 일찍 깨워요. 그리고 점점 30분씩 빨라져서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나고 있어요. 또 마크니 덕분에 집 청소도 열심히 하죠. 고양이 없을 때는 사실 잘 정리하고 다니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음식물 같은 것도 바로바로 안 치우면 얘가 먹을 수도 있으니까 잘 치우고. 본의 아니게 삶의 질이 높아지고 있어요.(웃음)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집은 사람만 사는 집과 달리 고려해야 하는 것도 따로 있는 것 같던데,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일단 집 구할 때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곳인지에 대한 기준이 추가됐지요. 또 집에 식물 같은 거 가져올 때도, 어떤 건 고양이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해서 조심하는 편이고요. 예를 들어 백합 같은 건 되게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사고 싶은 룸 스프레이가 있어도 혹시나 성분 중에 고양이한테 좋지 않은 게 있을까 봐 따로 물어보기도 해요. 찾아보니 향초도 반려동물에게 괜찮은 향초가 따로 있더라고요. 그래서 웬만하면 그런 걸로 사고요. 그러고 보니 제 취향에도 이 녀석이 관여를 하고 있네요.
 


어쩌면 이 집은 마크니에게 최적화된 집일 수도 있겠어요. 마크니는 이 집에서 어디를 제일 좋아하나요?

보통은 이 테이블 의자가 푹신하니까 자주 앉아 있고, 저기 밑에 있는 스크래처에 들어가 있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리고 침실에서 창문으로 넘어가서 베란다 통해 주방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도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사실 거의 침대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인데, 이제 보니 저보다 마크니가 이 집을 더 잘 활용하는 것 같네요.
 

근데 곧 이사를 가야 한다면서요? 이사를 많이 다녀서 이젠 이력이 났을 것 같긴 하지만, 정든 공간에 대한 헛헛함은 늘 있을 것 같아요. 이 집에선 어떤 게 가장 그리울 것 같나요?

이 집은 아침 6시부터 9시 사이에 들어오는 햇살이 가장 좋거든요. 그래서 봄가을엔 항상 베란다에 작은 테이블을 놓고 아침을 먹었어요. 마크니도 저기 앉아서 일광욕하면서 나무에 앉은 새도 구경하고 단풍도 구경하고요. 근데 이제 추워져서 몇 번 못 해보고 이 집을 나가게 될 것 같네요. 그래서 더 그리울 것 같아요. 그래도 새집으로 이사 가면 또 금방 적응하겠죠!
 

끝으로, 혹시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저는 큰 계획을 잘 안 하고 사는 편이에요. 사실 계획한다고 해서 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금 이 집에 오게 된 것도, 여기서 다시 이사를 가야 하는 것도 계획에 없던 일이고요. 그래서 그냥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매 순간 조금 더 나은 방향의 선택을 하려는 거고요.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아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구조 다세대 투룸
면적 약 49.5㎡(15평)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45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