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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 오래된 버릇

An Old Habit on the Table

식탁 위 오래된 버릇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32세 / 이효영

주부


Conditions

지역 경북 칠곡군 왜관읍
구조 다세대빌라 4층 스리룸
면적  69.42㎡(21평)
매매 8500만 원

 

Room History

 

23세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고시원 (보증금 없음, 월세 35만 원)
23세 서울시 관악구 서원동 다세대빌라 반지하 원룸 (보증금 500만 원, 월세 43만 원)
24세 서울시 관악구 서원동 다세대빌라 1.5층 원룸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50만 원)
26세 경북 경주시 동천동 다세대빌라 3층 1.5룸 (보증금 100만 원, 월세 31만 원)
27세 대전시 서구 갈마동 다세대빌라 4층 투룸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43만 원)

 

 

그는 늘 그녀 맞은편에 있다. 부엌이나 침대에 있을 때도 있지만 보통 식탁 위에 존재한다. 그들의 관계는 마치 오래된 벗 같다.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청각에만 의존할 때가 있는 반면, 그날의 기분에 따라 서로의 정보를 공유한다. 감정이 이식되지 않은 그에겐 기분이 있을 수 없다고 여길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녀의 남편이 잠들고 반려동물마저 잠잘 때 그녀의 우울을 달래주는 역할을 그가 한다. 화려한 재주로 그녀를 울리고 웃긴 후엔 오늘의 할 일을 끝낸 듯 그는 어둠으로 돌아간다. 그 순간 그녀는 까만 사각형 안에 비친 자신을 보고 만다. 음식이 사라진 빈 그릇과 그녀의 ‘어떤’ 표정. 어쩌면 그녀를 가장 잘 아는 건 그 사각형일지도 모른다. 우리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대에, 오늘의 식탁에, 너무도 많은 그와 그녀가 앉아 있다.



기차를 연달아 두 번 탄 건 처음이에요. 이곳 왜관읍이 고향이라죠?
네, 이곳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살았어요. 고등학교는 구미에서 다니고, 대학교는 홍성에서 다녔고요. 그 뒤로는 서울에서 살다가 미국에 1년 정도 있었고, 경주와 대구를 오가며 방랑하면서 살았죠. 혼자 살아도 보고 룸메이트도 구했다가 동생과도 살아봤어요.

어떻게 방랑의 끝이 고향이 됐네요?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가려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잠시 왜관으로 내려갔는데 그때 한인 피습 사건이 터져서 집안에서 유학을 반대했어요. 어쩔 수 없이 왜관의 파스타집에서 일을 구했는데, 그때 신랑을 만나면서 계속 이곳에서 살게 된 거죠. 저는 호텔 요리 서양식을 전공해서 주방에서 일했고, 신랑은 알바생으로 서빙을 했어요.

‘집순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집이네요. 깔끔하고 예뻐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마음의 병이 있어서 잘 안 나가는 부분도 있고요, 친구들이 별로 없기도 해요. 신랑도 마찬가지로 고등학교를 다른 지역에서 다니다 보니까 고향에 친구가 없더라고요. 이제 둘이 있는 게 편하고 강아지도 있다 보니 자연스레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어요.

저도 한 집순이 하지만 간혹 답답할 때가 있지 않아요?
딱히 갑갑함이나 답답함을 느끼지 못해요. 태어날 때부터 집순이로 타고난 거죠. 워낙 여러 지역을 거치면서 남의 집을 전전하다 보니까 지금의 집에 정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 같아요.



남편은 출근했겠네요? 원래라면 효영 씨가 아침을 먹고 있을 시간이려나요?
지금이 10시 20분이니까··· 사실은 아직 침대에 있을 시간이죠.(웃음) 신랑 배웅해주고 다시 자다가 이즈음 일어나서 휴대폰 좀 보다가 배가 고프기 직전에 음식을 차려요. 그때가 11~12시 정도?

왜 배가 고프기 ‘직전’에 식사 준비를 하죠?
배가 고플 때까지 뭉그적거리다 보면 허기가 져서 아무거나 먹는 것 같아요. 제가 배고픔을 잘 참지 못해서 급하게 만들 수 있는 라면 같은 음식으로 때우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먹고 나면 기분이 썩 좋진 않아서요.

“키 큰 남자(남편)가 출근하고 나면 자신을 위한 아침을 차린다”고 했어요. 함축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요?
신랑은 외향적인 편이고 저는 내향적인 편인데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아요. 음식도요. 신랑은 한식을 좋아하고 저는 전공 그대로 빵이나 수프 같은 서양식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아침을 따로 만들어 먹죠. 국이나 밑반찬은 며칠에 걸려 먹을 일이 많은데, 제가 차리는 식탁은 딱 그때 먹을 만큼만 만들고 메뉴를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거든요. 또 제가 우울증이 있다 보니까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를 먹을 때 몸에서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라서, 조리 과정을 많이 거치지 않아도 되는 그것들을 주된 식사로 선호해요.

지금은 많이 호전되었지만 혼자 마트에 가는 것도 힘들어했잖아요. 그래서 온라인으로만 장을 보는 건가요?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고요, 신랑이 오전 근무를 할 때도 있지만 야간에 일할 때도 있어서 함께 장을 보는 시간을 맞추는 게 어렵더라고요. 제가 급하게 재료를 구해야 할 때가 있는데, 워낙 작은 지역이다 보니 없는 식자재가 많아서 보통 온라인으로 주문해요. 지역 특산물이나 채소 정도는 동네에서 구할 수 있지만, 허브 쪽으로만 가도 구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그 허브를 주문하면 다음 날 집 앞까지 갖다주니까 바로 넘어간 거죠.(웃음)

그럼 밖에서 장을 볼 땐 어디로 가요? 저기 하나로마트 있던데요?
네, 하나로마트로 가요. 저희 지역에서 제일 힙한 곳이에요.(웃음) 아니면 식자재 마트에서 장을 보기도 해요. 거긴 식당에 납품하는 물건을 파는 곳이어서 규모부터가 남다른데, 마요네즈나 밀가루는 제가 꾸준히 쓰는 재료니까 한번 살 때 큰 걸 사요. 대신 어느 정도 기간 안에 쓸 수 있는지 가늠해야 하죠.

근처에 유명한 ‘왜곡시장’이 있는데 이용하는 일이 드물다고요. 요즘 아무리 배송이 빨라졌다고 한들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않는지요?
저는 음식을 구상하고 재료를 사는 게 아니라, 재료를 보고 음식을 구상하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다양한 식자재를 보는 게 더 좋고 도움이 돼요.



SNS를 보니 대낮에도 다양한 술이 등장하던데요? 막걸리, 위스키, 하이볼, 맥주 등등.
술은 낮에 먹어야 맛있고 커피는 밤에 먹어야 더 맛있더라고요. 결혼하기 전 친정에서 잠깐 살 땐 그걸 못 누리다가 제집이 생기니까 좋더라고요. 신랑이 제가 술 마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낮에 몰래 먹어요. 그러다 신랑이 퇴근하면 아주 멀쩡한 채로 “왔어?” 하는 거죠.(웃음)

그리고 옆에 꼭 아이패드를 두고 식사하더라고요? 그날의 요리에 따라 보는 영상도 다른지요?
음, 식사와 술을 먹을 땐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식사할 땐 미드처럼 연속적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을 보지만, 술을 마실 땐 일부러 술과 관련한 영상을 찾아보는 편이에요.



밥을 먹으면서 영상에 집중할 수 있나요? 그냥 정적이 싫어서 TV를 틀어놓는 사람도 많잖아요.
네, 밥은 밥대로 넘어가고 눈으로는 영상을 쫓을 수 있죠. 영상을 틀지 않을 때 불안감 같은 건 없지만 또 그 상황이 마냥 편하지도 않아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가 자취를 처음 시작하던 고시원 시절부터 항상 TV를 틀어놓은 것 같아요. 친구랑 살 때도 그렇고요. 음악을 틀 때도 있지만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리는 게 더 편하더라고요. 요리할 때도 영상을 틀어놓고 있어요.

그 행위가 효영 씨를 더 외롭게 만든 적은 없나요?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제가 먹는 약이 그 밸런스를 맞춰주고 있거든요. 과거에 TV를 볼 땐 꼭 브라운관 안에 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해서 힘들었지요.

지금 우울증이 많이 나아진 상태라고 했는데 극복할 수 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음식의 역할이 컸을까요?
음식의 영향은 없었고 저의 상태가 식사에 투영된 것 같긴 해요. 초반엔 불안한 감정을 마구잡이 폭식 형태로 표현했다면, 지금은 먹고자 하는 게 생기고 그것을 먹음으로써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다 보니 식탁 자체가 바뀌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제가 나아지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쟤네들, 바로 강아지들이에요.

조용한 상태에서 마음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잖아요. 저는 그게 두려워서 영상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땐 혼자 있는 게 두렵고 어색해서 영상을 튼 것 같아요. 지금은 영상 내용을 100% 따라가지 못해도 틀어져 있는 게 당연한 상태예요. 그 자체가 습관이 되어 오히려 정적인 시간이 필요할 때 영상을 끄는 것이 저의 다음 스텝이죠.

그럼 영상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노력한 적은 있나요? 책을 보거나 친구를 부르거나 하는 식으로요.
차를 마실 땐 책을 읽는데 식사할 땐 속도를 잘 못 맞추겠더라고요.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지 않는 건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이에요. 가끔 유튜브 라이브는 하는데 주제가 먹는 것이다 보니까 쉽게 교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직접 만나면 음식 외에도 이야기를 나눠야 할 부분이 많잖아요.


《음식과 먹기의 사회학》이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어떤 음식이 몸에 체내화됨으로써 그 음식은 자아가 된다.” 누군가는 과장된 표현이라 할 수 있지만 우리 한번 생각해봐요. 하나의 음식은 단순한 물질 덩어리가 아닌 그것이 탄생하기까지 문화와 역사가 함축되어 있어요. 그런데 어떤 음식을 꾸준히 고른다? 이미 그 음식이 지닌 성격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는 뜻 아닐까요? 비양심적인 기업의 제품을 불매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고요.
예전엔 무조건 싸고 양이 많은 것을 골랐다고 하면, 지금은 반려동물이 있으니까 동물 복지와 관련 있는 제품을 구매하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한 일련의 사건이 생길 경우, 제가 불매하는 것 말고는 크게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해 제 신념을 소심하게나마 드러내는 편이에요.

내가 먹은 음식을 추적하다 보면 끝끝내 나라는 사람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의 효영 씨를 표현할 만한 음식이 있을까요?
오므라이스 안에 있는 볶음밥?(웃음) 어쨌든 저는 지금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강아지들도 보살핌이 필요한데, 신랑이라는 달걀이 탁 덮어준다는 생각을 문득 했어요.

개인이 정의하는 집밥은 과거의 경험에서 우러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효영 씨가 생각하는 최초의 집밥 형태는 어떠했으며, 그 풍경엔 누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당연히 부모님이 해준 반찬이 떠오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한국인 세 명이랑 한 아파트에 모여 살았는데, 쉬는 날이 맞거나 누군가의 생일일 때 다 같이 모여서 한식을 만들어 먹었어요. 그때 친한 언니가 된장찌개와 약간 탄 달걀찜을 해주었는데 저는 거기서 집밥을 느꼈어요. 그 사람들과 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특별한 날에 시간이 맞아서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게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타지에서 느낀 최초의 가족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효영 씨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었는데 요리를 함으로써 기분이 바뀐 적이 있나요?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엄청 꾸덕꾸덕한 퍼지 브라우니를 만들어요.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구워져 나오는 순간까지 냄새가 계속 좋거든요. 그런 게 기분을 환기해주는 것 같아요. 요리는 제가 할 수 있는 행동 중 가장 자유롭다고 생각해요. 저희 집에서 부엌이 가장 애착이 가는 이유와 같은 맥락으로 요리는 제가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효영 씨처럼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있다면,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말해줄 것이 있나요?
스무 살 때 친한 친구의 자취방에 놀러 갔다가 책상 앞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봤어요. 거기엔 ‘과일 사 먹기’, ‘나를 위해 과일 먹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기’라는 글이 쓰여 있었죠. 왜 나는 저런 마음을 먹지 못했지? 하고 충격받은 기억이 있어요. 그 뒤로 저 자신을 건강하고 생기 있게 만들기 위해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챙겨 먹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배를 채우기 위해 대충 때우는 게 아닌, 나를 채우는 식사를 하자고 생각했지요. 혹시 저처럼 마음의 방학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신선한 음식으로 식사를 차리는 건 말라 있는 내게 물을 주는 일과 같다고 꼭 말해주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여태껏 본 영상 중 완벽한 식사 장면이 있나요?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명절 음식을 나눠 먹는 장면이 있어요. 음식을 덜어 먹고 덜어 먹고 하는 장면에서 묵직한 감동을 받았어요. 각자의 가족이 있음에도 하나의 목표 때문에 모여서 밥을 먹는 거잖아요. 굉장히 완벽한 식사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리운 감정이 들었어요. 그 대화에 나도 끼고 싶다는 생각? 일할 때는 항상 식사 시간에 남을 위한 음식을 준비해야 했고, 저는 식사 시간이 다 지나서 후다닥 먹어야 했거든요. 그러니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느긋하게 앉아서 서로를 위한 음식을 먹는 장면이 아주 좋았던 것 같아요.


Conditions

지역 경북 칠곡군 왜관읍
구조 다세대빌라 4층 스리룸
면적  69.42㎡(21평)
매매 850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