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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와 일터 사이의 변곡점

An Inflection Point between Work and Rest

쉼터와 일터 사이의 변곡점

Editor.Jayeo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정슬기, 정현모/ 31세, 33세

온라인 셀렉트 숍 ‘그로브’ 운영자, 뮤지션


Conditions

지역 경기도 파주시 운정신도시
구조 다가구주택
면적  82㎡(25평)
보증금 1억 원대(전세)

 

Room History

정슬기

20세 경기도 안성 학교 원룸촌(연세 300만 원)
22세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원룸(보증금 500만 원, 월세 75만 원)
23세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오피스텔 복층 원룸(보증금 500만 원, 월세 45만 원)
24세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 오피스텔 원룸(보증금 500만 원, 월세 60만 원)
26세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투룸 주택(보증금 1000만 원, 월세 70만 원)

 

저마다 집의 의미는 다르다. 재택근무가 일상인 정슬기에겐 일터이고, 작업실에서 돌아온 정현모에겐 쉼터인 것처럼. 상충되는 두 의미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지만,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에 금세 가려지고 말았다. 간극은 종종 끝없는 평행선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함께 나누는 점심, 마주 보는 눈, 말간 미소. 여전히 누군가는 일하고 누군가는 쉬는 공간이지만, 분명 이 둘은 둘만 아는 변곡점을 지나와 있었다. 그 순간에는 몰랐으나 지나고 보니 접점을 통과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재난의 시대가 전해준 변곡점이었다.


파주에서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와서 살고 있어요. 서울 도심과 꽤 거리가 먼데, 처음 이 집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요?
(현모) 제가 여기로 오자고 했어요. 도시에서 사는 게 너무 갑갑해서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물론 현실적 문제도 컸죠. 서울에 있는 집 대부분은 엄청 비싼데 낡고 오래됐잖아요. 그런 부분에 스트레스받으며 살고 싶진 않더라고요.
(슬기) 저희 집엔 고양이가 다섯 마리 있으니까 작은 집에 살 수 없었어요. 이 집이 신혼집치고는 큰 평수거든요. 하지만 고양이들을 위해 방이 많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둘 다 아파트엔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극단적으로 보면 획일화된 닭장 같기도 하잖아요. 같은 구조, 같은 공간. 하지만 여기는 창밖으로 옆집 강아지, 옆집 고양이도 보이고, 풍경이 따뜻해서 좋아요.

최근엔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살기 위해 외곽으로 나가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더라고요.
(슬기) 맞아요. 저희는 지금도 비교적 외곽에 살고 있지만 더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요.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도심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현모) 아주 예전부터 자연 친화적인 곳에서 어떻게 경제활동을 이어나가면서 살 수 있을까 늘 고민했어요. 그리고 팬데믹 이후에 진짜 구체적으로 그 계획을 그려보기도 했고요. 확실히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나니까 자연 조건을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현모 씨와 슬기 씨는 완전히 다른 직군의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현모) 저는 어릴 적부터 노래를 전공해서 음악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어요. 평소엔 실용음악과 입시 준비생을 위한 수업을 하고요, 가수들 콘서트나 페스티벌 공연 때는 녹음이나 라이브 세션에 참여하고 있어요. 간간이 제 목소리의 음원도 내고요. 보통 1~2월이 공연 휴식기인데 그때 학생들 입시 실기가 몰리고, 봄부턴 계속 페스티벌이 있으니까 정신없이 한 해가 흘러가요. 제 업무는 집에서 할 수 없어서 방음이 잘되는 작업실로 매일 출근하고 있어요.
(슬기) 제가 운영하는 ‘그로브’는 라이프스타일 온라인 셀렉트 숍이어서 모든 업무를 집에서 보고 있어요. 메일 업무, 택배 보내기, 발주, 촬영까지 모든 과정이 집에서 이뤄져요. 그래서 사실상 경계가 거의 없어요. 메일 보내다가 빨래 돌리고, 택배 싸다가 청소기 돌리고.(웃음) 처음에는 공간 분리를 해보려고 집 구조도 정말 많이 바꿨어요. 책상을 거실에 놨다, 안방에 놨다 하면서요. 그러다 지금의 구조로 안착했어요. 가장 효율적인 동선이더라고요.

올해는 코로나19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그로브 운영도 영향을 받았을까요?
(슬기) 그로브는 제 자신이 많이 투영된 사업이에요. 판매 제품의 셀렉트 기준 자체가 저 자신이거든요. 직접 사용해보고 만족한 물건만 판매하다 보니 제가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하나의 브랜드를 두고 그 제품을 전부 취급하지 않고 그중에서 제가 마음에 든 것만 선택해서 판매해요. 그렇다 보니 제품 하나하나가 제겐 특별하고 소중하죠. 그런데 팬데믹 이후 생존 자체가 중요해진 시점에서 저조차도 부수적인 소비를 줄이니까,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게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점점 생기더라고요. 이전과 똑같은 방향으로 소비를 독려하는 게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았죠. 그래서 이 시기에 사람들이 힘을 얻고 위로받을 수 있도록 책이나 CD를 많이 홍보했어요. 사람들도 그런 변화를 알아봐주더라고요.


공연업계에도 코로나19의 영향이 컸죠?
(현모) 공연이 전무한 상황이죠. 올해 2월 초에 한 공연이 마지막이었어요. 그 뒤로는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공연 한두 번 정도 한 것밖에 없어요. 이제 남아 있는 공연 자체가 거의 없어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세션으로 가장 자주 올라가는 무대예요. 하지만 관객이 없으니까 무대 위에서 피드백을 받을 수가 없잖아요. 그렇다 보니 공연이라기보다는 방송 녹화하는 기분이 들어요. 라이브의 생동감도 전혀 없고요. 원래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이면 설레는 긴장감이 들거든요. 그런데 그런 게 거의 없어요. 만약 관객이 있는 무대로 다시 돌아가면 이제는 그게 오히려 낯설 것 같아요.

슬기 씨에게 집은 일하는 곳이지만, 현모 씨에겐 쉬는 공간이에요. 이 간극이 두 사람에게 어려움을 주지는 않나요?
(슬기) 결혼 초반에 많이 싸웠어요. 남편이 보기에 저는 집에 있잖아요. 일한다고 해서 깨끗이 씻고 외출복을 입는 게 아니니까 아무래도 제가 집에서 쉬는 것처럼 보였을 거예요. 귀가했을 때 집이 정리가 안 돼 있으면, “그래도 집에 있으니까 더 신경 쓸 수 있지 않느냐”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당시 남편은 정말 바빠서 365일 일하러 나갔거든요.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잤어요. 그러다가 코로나19 이후에 남편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제가 일하는 걸 본 거예요. 그때 깨달았다고 하더라고요.
(현모) 쉼 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미안해졌어요. 그제야 비로소 이 친구한테도 집과 일의 분리가 필요하구나 깨달았거든요. 집 근처 빈 상가 사무실을 빌려볼까 하는 얘기도 했죠. 저는 굉장히 루틴화된 사람이에요. 하루 계획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괴로워하는 편인데, 그런 저도 집에서는 늘어지거든요. 집에서 해야 할 일이 분명 있지만 언제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집이니까 쉬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 공간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란 걸 알았죠.

오히려 코로나19 때문에 서로를 이해한 거네요?
(현모) 맞아요. 제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저는 평생 월급 루팡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잖아요. 쉬는 건 곧 경제적 수입이 없을 거라는 공식이기 때문에 늘 부담이 있었어요. 또 슬기가 개인 사업을 하니까 제가 버팀목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들어오는 일은 전부 받았고요. 그때는 이런 속마음을 서로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지 못했어요. 제가 말하면 슬기가 부담을 느낄 것 같았고, 슬기도 서운한 점이 있어도 말을 못 했죠. 결혼 후에 아무도 그러라고 한 적 없는데, 막연한 책임감을 느낀 것 같아요.
(슬기) 그래서 당시 남편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했어요. 오히려 공연이 줄어들고 나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또 남편은 합주 작업이 새벽에 있다 보니까 서로의 사이클도 안 맞았거든요. 그래서 그때 “얼굴은 보는데 눈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며 우스갯소리도 하고 그랬어요.(웃음) 밥 한 끼는커녕 눈을 못 마주치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았네요.(웃음)
(슬기) 이제는 밥 한 끼는 꼭 같이 먹어요. 눈도 보며 얘기도 하고요. 저희 같은 부부도 많을 것 같아요. 평소엔 밖에 있으면 말을 하도 많이 해서 집에선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서로 일상적 대화가 적었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대화도 늘어난 거죠.
(현모) 자신을 케어할 시간이 생기기도 했어요. 공연이 줄어들면서 그 시간에 운동도 많이 했고요. 경제적 수입이 줄긴 했지만 정서적으로 편안함이나 여유는 더 커진 것 같아요.


집에서 퇴근할 때는 어때요? 완전히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거치는 단계가 있나요?
(슬기) TV를 켜냐 안 켜냐의 차이가 크더라고요. 일할 때에는 보통 음악을 듣잖아요. 아무리 일에만 집중하려고 해도 고양이를 돌보거나 급한 집안일은 하게 돼요. 그 경계가 명확하진 않지만, 일을 끝내고 싶어서 TV를 켜면 신기하게도 완전히 모드 전환이 되더라고요.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면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어요. 그러다 보니 가족 간 마찰이 급증했는데 이런 현상을 ‘남극형 증후군’이라고 한대요. 두 분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나요?
(현모) 저희는 오히려 사이가 돈독해진 경우고요, 저희 누나를 예로 들면 누나가 육아를 하고 매형이 연구원인데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요. 그런 환경에선 정말 어쩔 줄 몰라 하더라고요. 아이 있는 집이 정말 많이 힘들다고 해요. 계속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대요. 일하는 동안엔 아예 문을 잠근다든지 하면서요.
(슬기) 그런데 이제는 아빠가 일한다는 개념을 계속 설명해서 아이가 그 부분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서로의 배려가 필요한 거죠. 재택근무가 확실히 늘어날 것 같긴 해요. 해보니까 되잖아요. 그래서 이 시도가 좋은 예행연습이 되지 않나 싶어요.

특히 일본에선 코로나19 이후 부부 갈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호텔에서 피난처 개념으로 숙박 프로그램을 내놓았다고 해요. 열흘 사이에 문의가 80건이나 왔다고 하더라고요. 한 공간에서 두 분에게 마음과 감정을 삭이기 위한 퍼스널 스페이스가 있다면 어디인가요?
(현모) 집에서요? 없는데···.(웃음) 저는 저에게만 오롯이 집중하고 신경 쓸 수 있는 공간이 작업실이에요. 애초에 집에만 있으면 너무 답답해하는 편이어서 퍼스널 스페이스가 집이 될 수 없는 유형이죠.
(슬기) 저는 완전 반대예요. 집 전체요. 집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끼거든요. 커피 내려 마시고 거실에 볕 들어오는 거 보고. 그런 게 너무 좋아요. 일하다가 힘들면 잠깐 누울 수도 있고요. 너무 좋잖아요. 일터에 침대가 있다니!

두 분이 완전 다르네요. 또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더 있어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부부간에 급증한 게 두 가지인데, 바로 이혼과 임신이래요. 코비디보스(Covidivorce)와 코로나 베이비 사이의 간극이 눈에 띄어요.
(현모)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부부가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있어본 적이 없는 거예요. 가정 내에서 폭행과 구타가 너무 심해지니까 캐나다에서는 구호를 요청하기 위해 손으로 사인을 만들기도 했대요. 손을 쫙 펼쳐서 엄지를 접고 그다음에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엄지로 덮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에게 영상통화를 걸어서 안부를 나누다가 이 수신호를 보내면 자신이 폭력을 당한다고 암시하는 거래요. 단절된 채 쌓아둔 문제를 지금까지는 그러려니 하며 넘겼는데, 같이 있으면서 단점을 직면하게 되니까 갈등이 더 커진 거죠. 안타까워요. 코로나 베이비도 그렇지만, 예측할 수 없고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두 분은 자영업자와 프리랜서예요. 세계적 재난으로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직군이기도 한데, 경제적 타격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운용했나요?
(슬기) 많이 흔들렸죠. 수입도 예년보다 줄었고요. 그래서 저희는 소비를 엄청 줄였어요. 쇼핑 지출은 거의 없고요, 식료품 소비는 늘었지만 외식 소비는 또 줄었어요. 대부분 집에서 해결하거든요.
(현모) 저희 부부에게 가장 큰 지출은 여행이었어요. 일단 제 주된 수입은 공연과 아이들 수업인데요, 보통 공연 수입으로는 저축을 하고 수업료는 생활비로 썼어요. 이 저축은 여행에 쏟아붓고요. 그런데 공연 수입이 사라진 상황에서 여행도 안 하게 됐잖아요. 그러니까 생활이 엄청나게 어려워진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 전에 간 여행의 잔재들, 카드 할부금이 저를 힘들게 했죠. 저는 그게 일이 줄었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간 씀씀이가 컸기 때문에 힘든 거더라고요. 많이 벌고 많이 쓰며 지냈기 때문에 소비 패턴을 바꾸기로 결정한 거예요.

집이라는 공간은 내가 가장 편안한 곳이기도 하지만, 고정 비용이 다달이 지출되는 근원이기도 해요. 팬데믹 상황 아래 양극단의 면에서 집을 어떻게 느끼고 바라보나요?
(슬기) 불안과 안정감이 공존해요. 집에서 얻는 힘이 크기 때문에 안정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제 집이 아니니까 사실상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잖아요. 언젠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불안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집 주변에 주택이 많으니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꿈을 꾸게 돼요. 코로나19로 공간이 중요해진 시점에서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고요.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강요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여기저기서 빨리 집을 사야 하는 것처럼 부추기니까요.

마지막으로 만약 새집으로 이사를 간다면, 이 코로나19 경험을 통해 어떤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나요?
(슬기) 이제는 사람이 많은 것 자체에 회의감이 드니까 아무리 좋은 인프라가 구축돼 있어도 도심이 크게 매력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문화적으로 예민한 감각을 갖기 위해 많은 것을 누리고 봐야 하지만, 이제는 그게 꼭 오프라인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았잖아요. 그런 경험도 집을 찾을 때 많이 작용할 것 같아요.
(현모) 집의 위치에 크게 연연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동안 집을 구할 때 OO권이 정말 중요했잖아요. 집의 경제적 가치에도 영향을 미쳤고요. 그런데 그런 곳은 사람들이 북적이니까 오히려 기피할 가능성도 있어 보여요.




Conditions

지역 경기도 파주시 운정신도시
구조 다가구주택
면적  82㎡(25평)
보증금 1억 원대(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