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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획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자

A Woman Free From Section

구획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자

Editor.Jayeo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이혜인/ 29세

<디렉토리> 매거진 에디터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
구조 다세대주택 투룸
면적  41㎡(12평)
보증금 7000만 원
월세 35만 원

 

Room History

무꺼풀의 눈이 반달이 되도록 웃고, 검고 굵은 머리칼이 탐스러운 여자. 나의 사수이자 <디렉토리> 매거진의 자유로운 영혼. 그의 이름은 이혜인이다. 그로 말하자면 어릴 적 스타일리스트를 꿈꿔 관련 학과를 갔다가, 모델 에이전시에서 7개월 일하고, 다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 입사했다. 비슷한 색깔의 회사를 두어 번 다닌 뒤 프리랜서 에디터로 전향. 정기적으로 기사 쓰는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옷과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자영업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직장인 에디터. 헥헥, 길다 길어. 직업의 영역이 없는 양 갈지자로 여기저기를 헤집은 그는 집 안에서도 일이 잘 안 될 때마다 엉덩이를 뗐다 붙여다 반복한다. 어떤 날엔 널찍한 거실에서, 또 어떤 날엔 침대 위에서, 볕이 좋으면 테라스로도 나간다. 이 사람, 어째 구획이 자유로워도 너무 자유롭다.



와, 드디어 이 집에 와보네요. 스물아홉 살에 첫 독립은 약간 늦은 감도 있는데, 이걸 결심하게 된 이유가 따로 있나요?
사실 독립을 마음먹은 건 스무 살 때부터예요. 그땐 근거리에서 예쁜 옷이나 좋은 책을 사는 활동이 중요했거든요. 그렇지만 돈을 따로 모으진 않았어요. 이상만 크고 행동은 하지 않은 거죠. 그런데 가족과 오래 살다 보니까 분리되지 않은 데에서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가족 어느 누구도 잘못한 게 딱히 없는데 그냥 그 자체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꼭 나와야 할 것 같아서 집을 알아보게 됐죠. 은평구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동네 주변에 여유롭게 산책하는 노인이 많고 작은 가게가 복닥복닥 모여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에요. 응암동으로 오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처음 집을 알아볼 때 전세 물량이 거의 없었어요. 부동산에 들어가서 “전•••”까지만 말해도 매물이 없다고 손사래를 막 치더라고요. 그렇게 점점 중심에서 외곽으로 밀려난 거죠. 막상 오니까 풍경이 한적하니 옛날 동네 같아서 마음에 들었어요. 독립 자체도 낯선데 동네 풍경까지 낯설면 힘들 것 같았거든요. 오히려 잘됐다 싶었죠. 제가 살던 인덕원과 비슷하기도 해요. 여기가 재미있는 게 저희 집 창밖으로 다른 건물의 옥상과 테라스가 보이거든요. 그런데 여름이면 무슨 뮤지컬처럼 사람들이 한 명씩 차례대로 밖으로 나오는 게 보이는 거예요. 처음엔 깜짝 카메라인 줄 알았어요.

혜인 씨는 ‘프롬 노바디’라는 편지 구독 프로젝트를 진행했잖아요. 매월 한 주제에 관해 글을 써 보냈죠. 그중 ‘내 독립의 소유권’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뒤늦게 자취하니까 좋지?”라는 질문에 자취는 이온 음료 같다가도 탕약 같아 애매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고요.
정말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게 주어진 자유는 너무 좋아요. 자유는 정말 소중한데, 그만큼 비용이 들잖아요. 제도적 문제에 대해 말해보자면, 한국 청년이 보증금을 구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새로운 대출 제도가 나와도 은행원이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같은 은행이더라도 지점이나 직원마다 대출 여부가 달라지고요. 정부에서 새로운 대출 제도를 내놓아도 건물주가 안 된다고 하면 그만이죠. 산 넘어 산이에요. 거기에 월세, 관리비, 보증금 이자, 각종 세금까지, 난리가 나는 거예요. 자유가 좋다고 하더라도 돈을 생각하면 웃음이 자연스럽게 거둬져요.

처음 집을 돌아보면서도 느낀 게 많았을 것 같아요.
집을 보면서 너무 놀란 게 저는 건물 밖에서 창문이 보이는 만큼 사람들이 산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들어가보면 말도 안 되는 평수로 쪼개놓은 원룸이 오밀조밀 모여있더라고요. 창문 하나 없는 원룸도 있고요. 그걸 보면서 청년들에게 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혜인 씨 일은 어때요? 그 전에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자영업을 했잖아요. 회사에 소속된 지금과 비교했을 때, 업무 방식이나 업무를 대하는 마음이 다른가요?
우선 회사에 소속된 직장인은 더 넓은 시야가 필요한 만큼 해야 할 일도 더 많은 것 같아요. 프리랜서는 나에게 주어진 일 하나만 개별적으로 잘하면 되지만, 담당 직원은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하니까요. 어떤 결과물을 냈는지, 또 그 과정은 어떤지 틈틈이 보고도 해야 하고요. 또 회사에서 사회성을 십분 발휘해야 한다는 것도 다른 점이죠. 다만 업무를 대하는 마음은 항상 똑같아요. 제 이름이 들어가는 이상 언제나 열심히 하는 편이거든요.


프리랜서의 재택근무와 지금의 재택근무가 다르기도 하나요?
제가 속한 팀은 코로나19 전부터 재택근무를 했기 때문에 사실 둘 차이가 그렇게 크진 않아요. 하지만 실제로 물리적 이동을 해서 일할 수 있느냐 없느냐 정도가 다를 것 같아요. 프리랜서 때에는 동남아, 유럽, 제주에 있는 채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일했거든요. 지금은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그럴 수 없죠.

입사와 동시에 시니어 에디터로서 다른 에디터를 리드해주는 역할을 맡아야 했어요. 저도 그 덕을 많이 봤는데(웃음),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진행하면서 의사소통 문제는 없나요?
저는 제가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해서 텍스트에 크게 의존하던 사람이에요. 아무래도 에디터들에게 피드백을 줄 때 메신저로 전하다 보니 텍스트 위주로 보내게 되잖아요. 그때 한 번 더 느꼈어요. ‘나는 글도 잘 못 쓰는구나’ 하고요. 내용을 전달하기 전에 내 머릿속을 먼저 정리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니까 텍스트로도 정리가 안 되더라고요. 누군가를 리드하는 사람이 되려면 굉장히 똑똑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이런 비대면 상황에서 명확한 디렉션을 전달하려면 훨씬 더 똑똑해야 하고요. 시니어 에디터는 또 약간 애매한 위치에 있어요. 평가를 하지만 평가를 받기도 하는 그 중간 어드메에 있죠. 그런 제가 노력하는 게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한 번쯤 이입해보는 거예요. ‘왜 이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을까?’,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상대방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러고 나면 대화의 방향이 조금 보이더라고요.

에디터이자 에세이스트이자 자영업자까지, 그리고 요즘엔 또 다른 직업을 위해 새로 배우는 게 있다고요?
근래 터프팅 tufting을 배웠어요. 터프팅은 천 위에 여러 가닥의 실을 수놓는 직조 기법이에요. 터프팅 건으로 캔버스에 실을 박아 넣어 러그 같은 걸 만드는 거죠. 저는 항상 제2의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에디터라는 직업은 상대적으로 수명이 길지 않고, 글은 계속해서 쓸 테지만 에디터로서 명확한 분야에 남는 게 아니라면 제가 쉽게 사라지거나 교체될 거라고 판단했거든요. 하지만 막상 해보니까 비용도 많이 들고 체력이 엄청나게 필요해서 다른 걸 더 찾아보려고 해요. 터프팅은 본업까진 아니더라도 판매 상품과 접목시킬 순 있을 것 같아요.

N번째 나를 확장한 경험이네요. 앞서 말했던 편지 구독 서비스 ‘프롬 노바디’도 결국 자신을 확장하고 싶은 데서 출발한 걸까요?
맞아요. 글을 써도 잡지에 싣거나 책을 내는 게 아니었어요. 기고가 아닌 거죠. 하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고는 싶었어요. 자체적으로 편지라는 콘텐츠를 빌려 에세이를 신청자에게 보낸 거예요. 우표도 직접 만들고요. 편지를 일일이 접고 우표를 붙이는 행위가 너무 좋더라고요. 요즘은 1분만에 메일을 보낼 수도 있잖아요. 또 메신저에 1이 금세 없어지면 ‘얘가 날 좋아하는 구나’, 1이 사라지지 않으면 ‘이별일 수도 있구나’ 하면서 쉽게 짐작하고요. 그런데 편지는 가는 것만 해도 오래 걸려요. 그런 기다림이 좋았어요. 당시 저는 섬처럼 살았거든요. 누군가로부터 잘 읽고 있다는 후기를 듣거나 제가 추신으로 남긴 질문에 장문의 답변을 받으면 ‘내가 이러려고 글을 쓰지’ 하고 다시금 느꼈어요.


그렇게 다양한 일을 해본 만큼 생산성 점검도 잘할 것 같아요. 혜인 씨는 자신이 어떤 때 집중이 잘되는지 알아차려요?
음…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느낌 아닐까요? 무아지경에 빠지는 거죠. 집중이 잘 안 되면 휴대폰을 많이 하게 되고, 그러면서 시간을 자꾸 확인하게 되잖아요. 집중할 땐 휴대폰 볼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냥 마감 시간만 중간중간 확인하는 거지.(웃음)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감각이 들 때, 엄청나게 몰입하고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효율성을 내기 위해 꼭 빠뜨리지 않고 하는 일도 있나요?
가장 기본인 체크리스트요. 저녁이 되면 가슴이 답답하잖아요.(웃음) 다음 날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그럴 때 전날 저녁에 다음 날 할 일을 적어놓으면 마음이 좀 편하더라고요. 대신 아침엔 안 돼요. 꼭 저녁에 해야 좋아요. 그래야 밤에 편히 잘 수 있으니까요. 아침에 하면 빠뜨린 거 없나, 다른 건 더 없나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사실 집중은 시간대에 따라 다르지만 업무 별로도 차이가 나요. 에디터로서 집중이 잘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터뷰 녹취 파일을 풀 때나 섭외 메일을 보낼 때 가장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이 과정에 따라 기사의 방향이며 퀄리티가 좌지우지되니까요. 반대로 새로운 호를 준비하면서 인터뷰이를 모색할 때 집중이 잘 안 돼요. 보통 유튜브나 개인 SNS로 찾다 보니 방해 요소가 정말 많거든요. 탐색이란 게 피곤한 일이기도 하고요. 더 이상 못 하겠다 싶을 땐 시간을 넉넉히 후하게 줘요. ‘네가 싫어하는 일이니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천천히 해봐’ 하며 돌입하는 거죠. 반대로 몰입이 쉽게 되는 업무엔 시간을 좀 짧게 줘요. 집약적으로 밀도 있게 하려고요.

보통 “메뚜기 뛴다”고 하죠? 집 안에서 계속 장소를 이동하며 일한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아무리 애를 써도 집중이 잘 안 될 때 공간적 환기를 시키는 거예요. 주로 거실 테이블에서 일하거든요. 그런데 허리가 아프거나 집중이 흐려지면 침실로 가요. 높은 베개 2개가 있어 등을 기대고 일하기 좋거든요. 침대에 앉으면 눕게 되고, 눕다 보면 잠든다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본래 낮잠을 자는 편이 아니라 가능한 것 같아요. 그리고 작은방엔 소파 같은 방석이 있는데 엄청 푹신해요. 거기서도 일하다가, 또 날이 따뜻할 땐 테라스에 나가서 캠핑 의자에 앉아 일하죠. 장소를 옮겨가면서라도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정말 좋은 게 새로운 라운드를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여기서 1라운드를 마치면, 저기서 2라운드를 시작하는 거죠. 기분 전환에 딱 좋아요.

     

그러고 보니 프리랜서 때에도 디지털 노매드처럼 일했다고 했잖아요. 공간 전환이 확실이 잘 맞나 봐요.
그런가 봐요.(웃음) 코로나19가 심각하지 않을 때엔 카페에도 자주 갔거든요. 심지어 카페를 옮겨 다니면서 일하기도 했고요. 어느 시점이면 갑자기 사람들로 어수선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커피만 홀짝이다 다른 데로 가는 거죠. 그렇게 집중하기 위한 장소를 찾아다녀요. 워낙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빈 공간이 있지만 너무 익숙해서 다른 활용법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조각 공간을 찾는 비법이 있을까요?
애매한 목적으로 쓰고 있는 공간이 있잖아요. 그런 곳에 나만의 정의를 확 내려주는 게 좋아요. 저도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땐 작은방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다가 놀이터로 활용해야겠다고 결정한 거예요. 책이랑 TV를 이곳에 두었거든요. 노는 곳이라고 정의하니 빈 공간이 생기면 다른 것을 상상할 여지가 생기더라고요. 애매함을 확실함으로 바꿔주는 거죠.

공간 이동을 조금 더 유연하게 도와줄 도구가 있다면 무엇을 추천하겠어요?
조명요. 저는 형광등이 너무 밝아서 안 켜요. 간접조명을 부엌, 거실, 침실, 작은방에 하나씩 두었는데 공간마다 조도가 다 달라요. 조도에 맞춰서 행동할 수밖에 없잖아요. 먼저 침실 것은 어둑해요. 책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조명이고, 거실은 3단계로 나눠서 밝기에 따라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죠. 또 노는 방은 상대적으로 가장 밝은 조명을 둬서 뭐든 할 수 있게 했어요. 형광등은 이따금 현실감각을 키워야 할 때에만 켜요.(웃음)

스스로 산만하다고 정의하는 사람이 많아요. 집중을 잘하기 위해 약이나 드링크를 먹기도 하고요. 이런 분들에겐 어떤 조언을 하고 싶어요?
처음엔 스스로를 비난하겠죠? ‘나 혹시 성인 ADHD인 거 아닐까?’ 하면서요. 그런데 산만하다는 건 주변에 시선을 빼앗긴다는 거고, 그만큼 관심을 둔다는 거잖아요. 비유하자면 한 가지에 숫자 1만큼 몰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여기저기에 0.3, 0.6, 0.1의 관심을 두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이런 경우, 오로지 한 가지에 1을 쏟아붓는 사람보다 더 재미있는 발상을 할 수 있고, 그럴 기회도 많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저도 이렇게 관심사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지만, 밥 벌어먹고 있잖아요? 그냥 그 정도의 의미를 두면 되지 않을까요? 너무 깊숙이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고 보면 혜인 씨도 싫증을 빨리 내는 편이잖아요. 공간 이동도 그런 성향의 결과일 수 있고요. 한 우물 파기를 미덕으로 삼는 사회 분위기에서 어떻게 마음을 조율하고 있나요?
저도 제가 산만하다고 생각해요. 이것저것 관심이 많잖아요. 한 문장으로 정의되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원체 그럴 수 없는 거예요. 인정을 했죠.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세요. 조금만 어수선하면 속독 학원 보내고 바둑 학원 보내잖아요. 딱 하나에 집중시키기 위해서요. 저도 그런 걸 다 해봤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저 같은 사람이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보여요. 이건 다른 말로, 산만한 사람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왔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생직장이 없는 만큼 스스로 일을 찾아야 한다면, 한길을 걸은 사람보다는 여기저기 기웃거려본 사람에게 더 유리한 시대가 온 게 아닐까요? 산만하다는 걸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너무 시대착오적 생각 같아요. (어깨를 으쓱이며) 그러니까 시대가 바뀌었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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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41㎡(12평)
보증금 7000만 원
월세 35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