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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문장의 창

A Window of a Sentence

어느 문장의 창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Article / gallery

글자가 만든 창엔 문고리가 없어, 어떤 문장은 나를 가두고 어떤 문장은 나를 해방시킨다. 나는 그 모호함 때문에 같은 문장을 여러 날에 걸쳐 읽는다. 오늘 나는 창 바깥에서 여섯 문장을 지켜보고 있다.

겨울 밤 창문 틈을 할퀴며 들어오는 바람 소리.
실톱이 쇠 위에서 소리치고 유리창이 갈라지는 소리. 당신의 목소리. 


– 한강,《희랍어 시간》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처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가 좋았다.

– 이상,《날개》

인적이 없는 마을을 거닐다보니, 가장 외딴 섬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텔레비전의 푸른빛이 창문으로 새어나와, 쌓인 눈 위를 비추었다. 창문마다 서로 다른 프로그램에서 내보내는 누더기 소음이 이따금 들려왔다. 외로움이란 사람들이 같은 방송을 시청하는 일이 드물다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세대나 가족은 저녁마다 각각 다른 위성이 보내는 서로 다른 세계에 몰두한다.

– 헤닝 만켈,《이탈리아 구두》

여전히 휘파람새가 뜰에서 이따금 운다. 봄바람이 간간이 생각났다는 듯 불어와 잎사귀를 흔든다. 고양이가 어딘가에서 심하게 물린 관자놀이를 햇살에 내놓고 포근히 잠들었다. 조금 전까지 뜰에서 고무풍선을 띄우며 시끌벅적하던 아이들은 다 같이 활동사진을 보러 가 버렸다. 집도 마음도 고즈넉한 가운데 나는 유리문을 활짝 열어 놓고 고요한 봄볕에 감싸인 채 황홀하게 이 원고를 끝낸다. 그러고 나서 나는 잠시 팔베개를 하고 이 툇마루에서 한숨 잘 생각이다.

– 나쓰메 소세키,《유리문 안에서》

유리창을 열고 코를 멀리 밀듯이 얼굴을 내밀고 안개 냄새를 맡는다. 안개 냄새에 색깔이 있다면 그것은 하얀색이 아니라 초록색일 것이다.

– 마쓰이에 마사시,《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이제 나는 서른다섯 살이 됐다. 앞으로 살 인생은 이미 산 인생과 똑같은 것일까? 깊은 밤, 가끔 누워서 창문으로 스며드는 불빛을 바라보노라면 모든 게 불분명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살아온 절반의 인생도 흐릿해질 때가 많다. 하물며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란. 


-김연수,《청춘의 문장들》

밤은 열두 폭 병풍처럼 현실을 가리고 나를 호위한다. 유리창을 바라봐도 내 얼굴과 나를 둘러싼 나의 실내를 되비출 뿐 외부를 보여주지 않는다. 밤은 그래서 모든 것들에 대해 “괜찮다 괜찮다” 말해주는 착한 아버지 같다.

– 김소연,《마음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