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mark wordmark

logo logo

어느 세입자의 그린라이트

A Tenant’s Green Light

어느 세입자의 그린라이트

Editor.Hana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박찬빈

29세 / ‘WeWork’ 커뮤니티 매니저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구조 다세대주택 투룸
면적 약 50㎡(15평)
보증금 1억2000만 원(전세)

Room History

24세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 단독주택 1층 원룸, 보증금 없음, 월세 25만 원
26세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상가주택 2층 원룸, 보증금 300만 원, 월세 30만 원
26세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1층 다세대주택 투룸, 전세 보증금 8000만 원

나는 고약한 집주인을 만난 적이 있다. 건축과 교수이던 집주인은 본인이 지은 집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으로 종종 세입자인 나를 공격했고, 내가 사는 건물에 사는 탓에 심리적 불편함까지 안겨주었다. 나와 자취 경력이 비슷한 인터뷰이 박찬빈을 만났다. 사실 그를 만나면 남의 집에 사는 설움을 토로하며 진한 공감대를 형성해볼 생각이었는데, 그는 내가 기대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가 여태껏 만난 집주인들은 대부분 좋았다고 했다. 이사 온 지 두 달째인 새집은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든다는 말도 덧붙였다. 적어도 지금 그는 행복한 세입자다.



공유 오피스 위워크 WeWork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곳에서 찬빈 님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위워크에 입주한 회사를 저희는 멤버라고 부르는데, 앞으로 멤버가 될 예정이거나 현재 멤버인 입주사를 대상으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어요. 공간 케어, 사람 케어 모두를 아우르는 일이죠. 생각해보면 사람 케어가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해요. 결국 공간을 채우는 건 사람이니까요. 사람을 케어하는 일이 더 어렵기도 하고요.

사적 영역에서는 어때요? 친구들도 잘 챙기는 편인가요?
음, 예전에는 그랬어요. 여러 사람한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에 주변 사람 대부분을 잘 돌본 것 같아요. 제가 그에 어울리는 외향적 성향을 지녔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일에서도 제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어느 순간 지치더라고요. 제 일이 싫지 않고 기본적으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도요. 그래서 언젠가부터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게 됐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주말이 기다려지고요. 그러면서 집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친구들이 왜 이렇게 연락이 뜸하냐고 섭섭한 마음을 비치곤 했는데, 이제 좀 다시 챙겨보려고 합니다.

무엇이든 케어한다는 건 결국 부지런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귀차니즘은 어떻게 극복하나요?
사실 저는 귀찮은 일을 싫어해요.(웃음) 그래서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내가 스스로 그 일을 하게끔 장치를 만들어요. 예를 들면, 정리가 필요할 정도로 집이 어질러져 있는데, 며칠을 미적거리며 손도 안 댈 때가 있어요. 그럼 저는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요. 손님이 오기 전에는 집 단장을 하게 마련이니까요. 청소를 할 수밖에 없죠. 동기부여를 스스로 만들면 돼요.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만회할 생각이에요?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예전 집은 작아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 적이 별로 없거든요. 지금 집은 꽤 넓어요. 이제는 친구들을 종종 초대하고, 음식도 직접 만들어 대접하고 싶어요. 지금 저와 제 친구들이 가장 기대하는 건 따뜻한 어느 날, 집 옥상에서 고기 파티를 하는 거예요. 접이식 캠핑 테이블이 있긴 한데 마땅치 않아서 봄이 되기 전에 새로 하나 장만할까 생각 중이에요.

평소 옥상에 대한 로망이 있었나요? 이 집을 고를 때 찬빈 님만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옥상은 제 위시리스트에 없었어요. 새집을 고르는 기준은 충분한 채광, 침실과 주방이 분리된 투룸이었어요. 전에 살던 집이 1층이라서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햇볕에 빨래를 널고 싶다’라는 바람이 있었죠. 그 조건에 맞는 집을 보러 다니다 이 집을 봤는데 한강이 내다보이는 옥상의 뷰에 반하고 말았죠. 시야가 확 트이는 느낌에 ‘이 집이다!’ 싶었죠. 저만의 공간인데 동네 길고양이하고만 공유하고 있어요. 가끔 옥상으로 올라와 일광욕하는 귀여운 친구예요. 옥상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햇살이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어요.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에요.



같은 동네 안에서 이사를 했잖아요. 어떤 점이 찬빈 님을 이 동네에 계속 머물게 하나요?
우사단 동네에 산 지 4~5년째 됐는데, 우선 집값이 저렴해요.(웃음) 일의 특성상 지점을 옮겨 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강남과 강북을 두루 다니기에 이태원만 한 곳이 없어요. 시장이나 지하철역도 가깝고요. 낡은 동네, 낡은 집에 대한 편견은 사라진 지 오래예요. 얼마 전에 제 권유로 친한 형도 이 동네로 이사 왔는데 만족해하고 있어요. 더욱더 친근한 동네가 됐죠. 그래서 떠날 이유가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자취 생활 6년 차 찬빈 님의 자취 역사를 요약해주세요.
대학생 때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4학년이 되니까 저만의 공간을 갖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방을 따로 사용하고, 아침저녁 식사까지 챙겨주는 하숙집으로 옮겼어요.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하면서 정식으로 자취를 시작했어요. 그때 이 동네로 들어왔고요. 첫 집은 상가 미용실 뒤에 자리한 원룸이었는데 파마약 냄새가 집에서도 나더라고요. 저는 괜찮았는데 부모님이 집을 보러 오셨다가 그 냄새를 맡고는 이사를 권하셨어요. 그래서 투룸으로 옮겨 살았는데, 저는 원룸보다 투룸이 훨씬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투룸으로 옮겼죠.

이제 보증금 이야기를 해볼게요. 첫 독립 때부터 보증금 마련은 어떻게 했나요?
대학생 때 하숙을 선택한 건 제가 모은 돈이 없고, 부모님께 보증금 신세를 지기 싫어서였어요. 첫 번째 자취 집이던 원룸은 워낙 보증금이 저렴해서 다행히 제가 모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요. 두 번째 집인 투룸은 대학생 전세 대출을 받아서 해결했어요. 지금 사는 집은 좀 우여곡절이 있는데, 직장인 전세 대출을 받아 계약하려고 부동산 중개업소와 이야기가 다 된 상태였는데, 알고 보니 이 건물의 용도가 주택이 아닌 점포로 되어 있어서 대출을 받을 수 없었어요. 제가 그걸 늦게 알았던 거죠. 그래서 대출을 받지 못했고 계약을 못 할 뻔했어요. 하지만 이 집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보증금을 빌려주셨어요. 현재 제가 매달 부모님께 이자를 드리는 방식으로 꼬박꼬박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보증금이란 단어를 들을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단어가 있다면요?
‘벽’요. 전·월세살이를 하는 누구에게 물어봐도 보증금은 항상 걸림돌이 되곤 하죠. 지금 제가 사는 이 집도 제 기준에서 현실적으로 당장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기에 부모님에게 빚을 지고 힘들게 구한 집이잖아요. 빚지는 삶이 늘 당당할 수 없기에 보증금이라는 녀석을 만날 때마다 현실의 ‘벽’, 마음의 ‘벽’을 느끼는 거 같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 가면 주눅이 드는 느낌은 피할 수 없어요. 전·월세 가격이 치솟는다는 뉴스가 반갑지 않은 건 당연하고요.

맞아요, 보증금 때문에 나 자신이 작아질 때가 많죠. 세입자로서 겪은 서러움도 있을 것 같아요.
다행히 저는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집주인, 부동산 중개업자 모두 좋은 분만 만났어요. 예전 집이 워낙 낡아서 한겨울에 동파 때문에 바닥에 물이 찬 적이 있는데, 집주인이 바로 조치를 취해줘 추위에 고생을 덜한 기억이 있어요. 지금 집주인도 제가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위약금 없이 계약을 파기해주겠다고 하셔서 감동하기도 했죠. 부동산 중개업자도 중간 다리 역할을 잘해줘 이 집에 이사하기 전 원하는 부분은 다 수리한 후 들어왔고요.

특이한 집주인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고요?
아, 이번 집주인이 좀 독특하긴 했는데, 이사 오기 전에 집을 수리할 부분이 있어서 집주인과 함께 집에 들어와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집주인이 집 안에는 처음 들어와본다고 하더라고요. 그 점이 놀랍기는 했지만 제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니니까요. 심지어 일산에 살아서 만날 일도 별로 없고요.(웃음)



저는 집을 꾸미면서 제 취향을 알게 되더라고요. 찬빈 님은 어떻던가요?
저도 그래요. 집을 옮길 때마다 점점 취향이 드러나는 거 같아요. 새로운 것에 호기심은 있지만, 점점 제 눈에 익은 것이나 낡은 것이 좋아지더라고요. 새 가구를 들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고 손때 묻은 것에 더 시선이 가요. 지금 사는 집도 턴테이블, 침대 매트리스 빼고는 기존 가구를 고스란히 옮겨 왔어요. 이 집은 나이가 좀 많아요. 1970년대에 지은 집이기에 많이 낡았지만, 대신 구조가 독특하고 간유리 같은 정감 가는 부분이 많아요.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눈감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동네에 계속 머무는 것처럼요.

남의 집이기에 집을 꾸밀 때 주저하는 부분도 있죠?
네, 예를 들면 못은 절대 박지 않아요. 복구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집을 꾸미려고 해요. 여행지에서 가지고 온 포스터, 지도 등을 벽에 붙여놓곤 하는데 나중에 떼어내면 감쪽같아요. 그런데 이 집이 재미있는 건 벽 곳곳에 지저분할 정도로 이미 못이 많이 박혀 있다는 거예요. 귀찮기도 해서 그냥 두고 제가 오히려 옷걸이로 사용하고 있어요. 이것도 나름 멋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찬빈 님의 집은 여행이 많은 부분을 채우고 있는 거 같아요. 포스터도 그렇지만 펜던트 조명등도 암스테르담에서 사 온 거라고 했잖아요.
여행도 취향의 발견인 것 같아요. 예전에 코펜하겐을 여행할 때 일반 집들의 조명등이 하나같이 너무 예쁜 거예요. 그때부터 조명등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 후 암스테르담을 여행할 때 길가에 있던 라이프스타일 숍에 들어가서 조명등을 사 왔거든요. 어렵게 트렁크에 넣어 가지고 와서 보관만 하다가 이번 집에 처음으로 설치했어요. 제 취향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 지금 집이 참 마음에 들어요.

여행할 때 에어비앤비를 많이 이용하던데, 숙소를 고르면서도 본인의 취향을 재확인할 수 있지 않나요?
맞아요. 저는 해외여행지의 숙소를 구할 때 꼭 호스트와 한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곳으로 구해요. 호스트와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고, 그들이 추천하는 식당이나 숍 등에 가보는 거죠. 집만 빌리는 거는 호텔에 묵는 거와 별반 다를 게 없어요. 2년 전, 도쿄에 혼자 여행 간 적이 있어요. 일본 유학 중인 누나가 너무 번잡하지 않고 아기자기한 카페가 있는 곳이라며 ‘시모키타자와’라는 지역을 추천해줬어요. 그곳에서 제가 찾은 숙소는 그리스인 엄마와 두 아들이 함께 사는 집이었고, 두 아들이 어릴 적 지내던 다락방을 게스트에게 내주더라고요. 보통 다락방에 대한 로망이 있잖아요. 그래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어요. 제가 그 집의 첫 게스트였는데, 처음 집을 찾아갈 때 길 안내도 너무 친절했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손 편지도 써줬죠. 마지막 날, 집주인이 본인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는데, 그 식사 자리에 저도 함께했어요. 그리스 음식과 와인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정말 즐거웠죠. 나중에 다시 도쿄를 여행할 일이 생긴다면 또 가보고 싶어요.

현재 꾸는 꿈이 있나요? 무엇이든 좋아요.
1층에는 커피와 책이, 2층에는 아늑한 스테이가 3개쯤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정말 막연한 생각이지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제 고향인 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때쯤이면 제 취향이 더욱 견고해져서 정말 나다운 공간을 꾸밀 수 있을 것 같아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구조 다세대주택 투룸
면적 약 50㎡(15평)
보증금 1억2000만 원(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