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mark wordmark

logo logo

밀짚모자를 쓴 남자

A Man in a Straw Hat

밀짚모자를 쓴 남자

Editor.Hyuna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30세 / 이재윤

직장인


Conditions

지역 전북 전주시 덕진동
구조 복층 오피스텔
면적  36㎡(약 11평)
보증금 5000만 원(전세)

 

Room History

 

 

밀짚모자는 뙤약볕 아래 선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밀짚모자를 쓴 청년이 자취방 안에서 자신을 도시 농부라고 소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목덜미가 까맣게 타고, 손톱 아래 흙이 빠질 날이 없으며, 운동화보다 장화를 더 많이 신는 농부가 아니다. 다만 자취방에서 가장 볕이 좋은 자리를 농작물에 내주고,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작은 옥상 텃밭을 오간다. 직접 수확한 배추 세 포기를 소금에 절여놓은 후 혼자 하는 김장은 처음이라며 들뜬 얼굴로 말하는 그를 다시 보았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밀짚모자가 잘 어울렸다.



오늘 직접 기른 배추와 무로 자취방에서 김장을 한다고 들었어요. 배추는 벌써 절여두었네요.
하하하. 왜인지 모르겠지만 직접 해보고 싶더라고요. 고향 집에서 늘 직접 기른 배추로 김장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무씨와 배추 모종을 얻어왔어요. 배추는 10월 중순에, 무는 11월에 심어 길렀지요. 조금 늦게 심은 터라 작게 자랐네요. 마늘, 대파, 양파, 액젓 등 기타 재료도 시골에서 가져왔어요.

도대체 어떤 일을 하기에 김장을 직접 하는 건가요? 저는 요리 관련 일을 하거나 자취 경력 10년 차는 아닐까 추측했어요.

자동차 정비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고향은 충남 안면도이고 대학은 서울에서 다녔는데, 취업하면서 전주로 발령받아 오게 됐어요. 벌써 2년 2개월 정도 됐네요. 학생 때는 누나들과 항상 같이 살아서 자취는 처음이에요.

유튜브 채널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자신을 ‘도농 이선생’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왜 도시 농부가 되려고 하나요?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셔서 어릴 때부터 도와드린 경험이 많거든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거든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는 일이라고 느껴서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혼자 살게 되면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누나들도 신기해해요. 집에서 그렇게 농사를 지었는데, 왜 또 혼자서 뭘 키우고 있느냐면서요.(웃음)

자취방에서 식물을 키우는 경우는 많지만, 농작물을 기르는 분은 흔치 않아요.
저에게는 농작물보다 식물을 기르는 일이 더욱 생경한 경험이거든요. 해본 것을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농번기에는 고향에 거의 매주 내려가요.

지금까지 자취방과 옥상에서 어떤 작물을 길러왔나요?
맨 처음에 키운 작물은 상추와 치커리예요. 그다음에는 수경 재배로 양파, 고구마, 대파를 키웠고요. 고구마는 색도 정말 예뻐요. 또 고추, 가지, 토마토에 도전해보기도 했어요.

집에서 작물을 기르다 보니 예상치 못한 난관이나 한계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실패도 많이 했어요. 햇빛이 잘 드는 편인데도 역시나 실내에서만 키우기는 어렵더라고요. 중국식 가지 요리에 도전하려고 가지를 기른 적도 있는데 크기를 키우려다 수확 시기를 놓쳐 상한 적도 있고, 오이는 흰가루병에 걸려서 실패했죠. 토마토는 총 다섯 대를 키웠는데 150cm 넘게 자랐어요. 창문을 뒤덮을 정도로요. 그런데 햇빛이 부족해서 열매가 많이 맺히지는 않더라고요. 한 열 알 정도 수확했어요. 그래도 꽃이 피었다가 지고 열매 맺히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신기했어요.



보통 끼니는 어떻게 챙기는지 궁금해요.
점심은 회사에서 먹고, 아침과 저녁은 집에서 주로 해 먹는 편이에요. 아침은 시간을 들여 차리기 힘들어 미리 끓여둔 국이나 반찬과 함께 먹고요. 자취 초기에는 요리를 정말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덜하지만 여유가 있으면 늘 직접 챙겨서 먹으려고 해요. 키우는 작물이 있으니 재료도 끊이지 않고요.

작물을 직접 키우면서 식생활에 변화가 생기기도 했나요?
원래도 채소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직접 키우다 보니 채식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수확량이 많지 않으니 소식을 하게 되고요. 하하하! 그리고 농작물은 때를 놓치면 다 상해버리니까 제때 수확해서 부지런히 요리해 먹어야 해요. 그러니 자연스레 인스턴트도 덜 먹게 돼요. 라면을 사놓은 게 있는데, 얼마 전에 보니까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더라고요. ‘이왕이면 요리하고, 이왕이면 밥 먹자!’ 하는 생활이 된 거죠.

그래도 요리를 하려면 다른 재료가 필요할 텐데, 마트에도 종종 가겠죠?
사실 장을 안 본 지가 좀 됐어요. 식자재를 대부분 고향에서 받기도 하고요. 대형 마트에 갈 때는 제가 절대로 만들 수 없는 걸 사죠. 마트 채소는 대부분 여러 개씩 묶어서 팔고, 빨리 소진 못 하면 버리기 십상이니 키워 먹거나 집에서 기른 작물을 받아오는 게 편해요. 필요할 때 가져오면 제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이미 손질해서 나오는 제품은 중간 처리 과정을 알 수 없으니 의심이 되기도 하고요.

마트에서 판매하는 재료가 아니라 직접 키운 작물로 만든 요리는 조리할 때나 식사할 때 분명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어떤 요리든 키워서 수확해 먹는다는 행위에서 느끼는 보람이 있어요. 사실 사는 건 쉽잖아요. 또 장을 보러 가면 항상 제가 예상한 것보다 많은 금액을 쓰게 되더라고요. 생활비도 줄일 수 있으니 뿌듯하죠.



요즘은 재료를 바로 쓸 수 있도록 손질해서 파는 경우도 많잖아요. 이런 걸 자주 보다 보니 저도 과일이나 채소가 어떻게 열리는지, 원형은 어떤지 종종 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가끔 영상 만들 때 일부러 설명하곤 해요. 배추 뿌리를 보신 적이 있느냐고요. 일부러 캐서 보여주고 직접 먹어보기도 하죠. 보통은 작물이 어떤 형태로 자라는지 잘 모르잖아요. 저도 조카가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종종 “삼촌, 이거 뭐야?” 하면서 물어보는 것도 좋고, 저도 설명해줄 수 있어서 기뻐요.

직접 수확한 감으로 곶감을 만들기도 했잖아요. 죄송하지만 저는 그 동영상이 실패로 끝날 줄 알았는데, 정말 곶감이 되어서 신기했어요.
저도 처음 시도하는 거라 방법을 잘 몰랐어요. 껍질을 까고 달아야 하는데, 그 과정을 빼먹어서 곶감이 되지 않고 그냥 익더라고요. 나중에 그걸 알고 제대로 말렸더니 곶감이 되더라고요. 신기했습니다. 그걸로 곶감말이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만들어서 대접했는데, 손님이 잘 안 먹으려 하더라고요. 하하하!

말릴 때 사용한 실이 식용이 아니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웃음)
음, 그건 사실 유튜브 콘셉트이기도 하고, 제 성향이기도 한데요, 뭘 사서 하지 말고 집에 있는 걸로 해결하는 게 목표거든요. 그래서 집에 있는 끈을 재사용한 거예요. 토마토 키울 때도 끈을 지지대로 활용해서 타고 올라가게 했고요. 그래서 얼핏 안 좋아 보일 수는 있죠. 화분도 사는 게 아니라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쓰니까요. 뭘 사서 하려면 거추장스럽고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전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준비물부터 사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사실 농사를 짓기 위해 무언가를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물뿌리개, 삽, 비료, 큰 화분, 작은 화분 등. 그래서 애초에 사지 않고 집에 있는 물건으로 최대한 활용하려고 해요. (전화가 울린다.) 잠시만요. “예, 엄니. 이이, 됐어요. 오늘 휴가 내서 괜찮아요. 볼일 있어서. 배추 절여놨고, 무는 썰어놨어요. 예, 그렇게 하려고요. 풀은 쒀놨고. 예, 알겠어요. 해서 보쌈 먹어야지. 예~”




어머니 전화인가 보네요?
오늘 김장하는 게 걱정되셨나 봐요. 옆에서 이모가 웃으시네요. 저번에 고향 집에서 김장했는데 집에서 왜 또 하느냐고요. 사실 그때 저는 무거운 걸 나르는 역할을 맡아서, 김칫소 넣는 건 처음이에요.

누나들보다는 어머니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웠다고요.
네. 누나들이 먼저 대학 등의 이유로 상경한 후 부모님과 셋이 산 기간이 꽤 길었거든요. 그때 제가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면, 어머니가 항상 숭덩숭덩 뚝딱뚝딱 만들어주셨어요. 그게 신기하고 궁금한 마음에 어떻게 했냐, 뭘 넣었냐 종종 물어보곤 했죠. 얘기해주시면 받아 적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요리에 대한 감이 생기더라고요. 누나들이 좀 신기해해요. 은근히 맛을 잘 내고, 자기들보다 더 잘해 먹는다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고향의 맛’을 떠오르게 하는 솔 푸드가 분명히 있겠네요.
어머니의 두릅무침과 엄나무순무침요. 약간 달게 만드시는 감은 있지만. 하하하! 그 음식은 항상 맛있어요.

만약 ‘나도 집에서 농작물을 키워보고 싶다’는 초보자가 있다면, 어떤 작물을 추천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양파와 대파가 아닐까요? 수경 재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지금 집에 있는 대파는 한 서너 번 잎을 수확해 먹었는데도 여전히 잘 자라요. 흙을 써도 되는 환경이라면 상추와 치커리를 추천하고 싶어요. 자고 일어나면 자란다니까요! 저는 아침마다 수확해서 회사 사람들에게 갖다주기도 했어요.

양파는 관상식물보다는 훨씬 생장 속도가 빠른데, 작물이 집 안에서 커가는 걸 지켜보는 기분은 어떤가요? 식물만 해도 보살피다 보면 꽤 부지런해지는 느낌이 들곤 하거든요.
맞아요. 아침마다 물 주고, 날씨가 추워지면 실내에 들였다가 내놨다가 일조량도 신경 써야 하는 등 할 일이 많죠. 저는 유튜브를 하니 기록도 해야 하고요. 그러다 보니 집에서 좀 더 부지런해졌어요. 농작물은 관리를 안 하면 확실히 바로 드러나더라고요.



다음 집을 도시에서 구해야 한다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어요? 도시 농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다른 기준이 있겠죠?
결혼 계획이 있어서 아파트로 이사하려 하는데, 채광과 통풍이 좋고 베란다가 있는 집이 1순위예요. 장판 위에서 작업하면 아무래도 청소하기 힘들고 관리하기도 까다로우니까요. 그리고 아무리 수돗물에 미네랄이 있다고 해도, 작물은 비를 맞아야 좋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내리는 비를 맞아야 쑥쑥 자라요. 그런 환경을 갖춘 집이면 좋겠어요.

혹시 도시가 아니라 시골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나요?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고향에 오갈 때 종종 생각해보곤 해요. 조용하고 각박하지 않은 느낌이 드니까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누나들도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혼자 살다 보면 인간관계나 일 등 주변 환경이 변할 때 쉽게 어려움을 겪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 건강함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처음 연고가 없는 전주에 왔을 때는 조금 힘들었어요. 집을 구하기 위해 한 달 동안 게스트하우스 생활을 했거든요. 조용하고 좋은 공간을 찾고 싶어 애를 썼죠. 지치기 직전에 겨우 집을 구했는데 계약 문제로 파기됐고, 우여곡절 끝에 이 집으로 오게 됐어요. 그런데 집을 구하는 데 힘을 많이 써서 그런지 막상 ‘왜 여기서 살아야 하나?’ 싶더라고요. 술 먹고 늦게 들어와서 잠만 자고 나가게 되고요. 집의 의미가 사라진 거죠. 그래서 작물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관리하고 책임질 것이 생기니 생활이 조금씩 달라졌어요. 하다못해 물이라도 줘야 하니까요. 생명을 키우는 일에서 활력을 얻을 수 있더라고요.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려면 자신만의 활력소가 하나쯤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이 집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혼자 사는 집일 수도 있겠네요. 이곳에서 혼자만 누린 가장 귀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조용한 집 안에서, 혹은 옥상에서 노을 질 때 따듯한 차 한잔 마시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때요. 노을이 정말 예쁘거든요. 혼자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게 참 좋더라고요. 누군가와 함께인 시간도 소중하지만 나만의 시간도 필요하잖아요. 집에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을 때 그런 시간이 찾아오더라고요.



Conditions

지역 전북 전주시 덕진동
구조 복층 오피스텔
면적  36㎡(약 11평)
보증금 5000만 원(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