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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쉼 사이에 파티션을 없앤 집

A House without Partitions between Work and Rest

일과 쉼 사이에 파티션을 없앤 집

Editor.Hyei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채승아 / 30세

마케터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구조 오피스텔 1.5룸
면적  50.12㎡(15평)
전세 약 2억 원대

 

Room History

24세 전라북도 전주시 금암동 고시원
(보증금 60만 원, 월세 25만 원)
27세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오피스텔  원룸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45만 원)

채승아의 집에 들어서면 떡하니 책상부터 보인다. 그 뒤로 키 큰 책장이 있고 한쪽엔 지구본이 놓여 있다. 마치 어느 젊은 회장님의 집무실처럼 책상이 손님을 맞이하는 것 같다. 그는 코로나19 이전부터 틈틈이 재택근무를 했다. 업무 관련한 책을 읽고 분석하고 공부하며, 주말에도 침대에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다시 책상으로 가서 일하곤 했다. 그야말로 일과 쉼의 경계가 없는 생활인데, 그는 이런 생활을 원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집의 중앙에 책상을 배치한 것이라고. 또 그의 집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집 안 곳곳에 있는 성(性)에 관한 책과 하트 모양 오브제이다. 처음엔 이 독특한 가구 배치와 물건들로 당황했는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섹스토이 브랜드에서 일하는 채승아는 일과 사랑이 제일이라 말한다.


메일로 마케터라고 소개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글램이라는 소셜 데이팅(social dating) 앱을 만드는 회사에서 섹스토이 브랜드를 론칭했는데, 제가 거기서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고 있어요. 인터뷰 섭외 메일을 받고 되게 신난 게 이전엔 매거진 <맥심>에서 마케터로 일했거든요. 같은 매거진 쪽에서 연락이 오니 괜히 반갑더라고요.


오, 이전에 만나보지 못한 직업을 가진 분이네요.
사실 섹스토이 마케터 일은 좀 험난해요. 아무래도 성인용품이니까 광고하기 쉽지 않아요. SNS의 모든 매체를 사용할 수도 없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까지 장벽이 많아요. 사실 저도 이렇게까지 업계의 통로가 좁고 힘든지 정말 몰랐어요. 제가 이 회사를 선택한 건 단순히 회사의 비전이 마음에 들어서였거든요. 저희 브랜드 이름은 Loma인데 Love Myself의 줄임말이에요. ‘사랑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뜻이죠. 저에겐 가장 중요한 건 일과 사랑이다 보니 혹하게 된 거예요.


산이 보이는 뷰를 자랑스러워하던데 그럴 만하네요. 구파발 쪽엔 어떤 이유로 살게 된 거예요?
원래는 2년 전에 룸메 두 명이서 이 건물 5층에 살았어요. 지금보다 반 정도 작았으니까 7~8평 정도였으려나요. 거기서 세 명이 지냈어요. 상상이 안 되죠? 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았나 싶어요. 처음부터 얘기하자면 제가 목포 사람인데 서울로 취직하러 무작정 올라왔거든요. 당연히 거주할 곳이 없었는데 대학교 때 알던 언니가 일단 여기 와서 살라고, 차차 집을 알아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구파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살게 된 거예요. 막상 살아보니 이 동네가 좋아지더라고요. 오피스텔도 깨끗하고 구파발 거리도 한적하고 편의 시설도 다 있고요. 그리고 북한산 근처여서 그런지 공기가 진짜 달라요. 구파발만의 공기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집을 알아봐야 할 때 다른 고민 안 하고 이 오피스텔을 알아봤어요. 마침 매물 나온 게 있었는데 이렇게 뷰도 좋으니까 당장 계약했죠. 자연과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거든요.


회사는 어디에 있어요?
청담동 쪽요. 출퇴근만 3시간이 걸려요. 진짜 그것 때문에 집에 오면 번아웃돼요. 완전 기절. 그럼에도 이곳에 사는 걸 후회 안 해요. 주변 사람들이 그럴 거면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편하게 살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이해가 안 되거든요. 직장이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옮겨 가는 것보다 좀 멀어도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성공했네요? 7평에서 살다가 16평으로 오고!
하하, 4년 동안 열심히 붐업해가지고. 사실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가능한 거지 저 같은 직장인의 수입으로는 여기에 살 수 없죠. 대출을 받을 수 있었지만 부모님께서 도움을 주신다고 하셨기에 “넵, 알겠습니다” 하고 받았어요. 열심히 일해서 갚아야죠.


‘좋은 공간, 행복한 경험’이 승아 씨가 생각하는 집의 가치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좋은’ 공간이란 무엇이고, ‘행복한’ 경험은 무엇이에요?
제가 뱉어놓고도 엄청나게 고민이 되네요. 생각해보니 너무 철학적 표현 같아서···. 그냥 편하게 말하자면요, 대학생 때 3평 남짓한 고시원 같은 곳에서 살았어요. 거기서 자취를 시작했죠. 그런데 너무 불행한 거예요. 뭘 하고 싶어도 공간의 제약을 받으니까 이 안에선 상상할 수도,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었어요. 그때 공간이 내게 주는 영향이 되게 크구나 하는 걸 느꼈지요. 구파발 쪽으로 오고 나서는 룸메들과 쿵작 잘 맞고 재밌게 지내면서 공간과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매일 퇴근하고 와서 회사 욕을 하면 또 서로 들어주고, 맛있는 것도 먹고···. 정서적인 힐링이랄까요? 음, 그러니까 정리해보자면,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운 공간에서 가끔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또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행복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SNS를 보니 가구 위치가 자주 바뀌는 것 같더라고요. 집을 계속 변화시키는 이유가 뭐예요?
제가 자주 바꾸는 편이긴 해요. 계절별로, S/S, F/W 느낌으로다가.(웃음) 아마 성격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워낙 지루한 걸 싫어해서 변화를 좋아하고 매일 새로움을 찾으려다 보니까 공간을 계속 건드리게 되더라고요. 여름엔 한창 재택근무할 때여서 테이블을 거실 정중앙에 두고 침대를 벽 쪽으로 붙여놓았어요. 사무실처럼 느껴지도록요. 배치만 바꿨을 뿐인데 새로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침대보다 책상이 커서 그런가, 아니면 집에 들어서자마자 책상이 보여서 그런가, 이 집의 주인공이 책상 같아요.
저는 이걸 생각을 못 했거든요. 에디터님의 질문을 받고 ‘아, 내가 왜 이렇게 배치했을까’ 생각해봤는데, 결국엔 일이 중요해서 그런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일을 돈벌이 수단보다는 꿈을 이뤄가는 자아실현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일 자체가 내 삶에 당연히 녹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공간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 위주로 구성해야 할 것 같았어요.


아니, 일이 얼마나 중요하면··· 딱 들어서자마자 회장님 자리인 줄 알았잖아요.(웃음)
지구본 딱 있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딱 놓여 있고.(웃음) 저는 쉬다가도 일하는 스타일이어서 책상과 가깝게 지내는 게 맞아요. 주말에도 뭔가 좀 더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공부하는 타입이거든요.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왜 주말까지 일하느냐고 묻는데, 저한텐 일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재밌어서 하는 일이거든요. 뭐, 남들이 보면 힘들게 사는 타입이죠.


일에 대한 열정은 타고난 걸까요? 유노윤호처럼?
네, 저도 유노윤호과예요. 타고난 것 같아요. 누가 동기부여해주지 않아도 워낙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돋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 자체를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열심히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 과정에서 인정받으면 더욱 행복한 거고요.


일에서 승아 씨가 자극받는 누군가가 있어요?
어릴 땐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였어요. 제가 갖고 싶어 하는 모든 걸 다 가졌거든요. 스타일, 유머러스함, 글 잘 쓰는 것, 섹슈얼 분야에서 소신 있게 말하고, 인간을 탐구하는 게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다른 캐릭터라고 하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 아무것도 모른 채로 패션계에 발 들였다가 혼나고 까이면서도 결국엔 성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저희 회사 동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아요. 탁월한 동료들만 모인 회사거든요. 제가 초창기 때 매일 울었는데, 나는 여기에 있는데 동료들은 저 멀리에 있으니까 미치겠는 거예요. 그 갭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앞이 깜깜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확실히 일 잘하는 동료들과 함께 있으니까 배울 점이 많더라고요. 더디더라도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랄까요.


재택근무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무얼 생각했나요?
저는 좀 암담했어요. 올해 3월에 이직을 했거든요. 오자마자 재택근무를 6월까지 총 3개월 동안 한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잘 알지도 못하는데···. 또 갑자기 생각나네, 암담했던 시절이.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니 뭐부터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화상으로 대화해도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정보를 찾으려 해도 남들보다 두세 배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이직한 게 잘한 건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묻고 싶었던 게 보통 침대는 방에 놓지 않나요? 이렇게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도 쉼과 업무의 분리가 잘되나요?
분리되지 않기를 원한 거죠. 저에겐 쉬는 것만큼 일도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제집을 구하면 딱 두 가지를 갖추고 싶었는데 하나는 드레스 룸, 하나는 서재였어요. 아무래도 룸메들과 함께 살 땐 하고 싶은 것을 다 못 하잖아요. 그래서 벼르고 있다가 이사하자마자 딱 하나 있는 방을 옷과 책에 양보했죠. 자연스럽게 침대는 거실에 두게 되었고요.


진짜 원하는 것을 다 이룬 셈이네요?
그래서 행복해요. 공간을 내 뜻대로 꾸미고 그에 맞게 살고 있으니까요. 거실에서 착실히 일하고 저 방에 들어가선 혼자 패션쇼 하고 그래요. 가끔은 음악 틀어놓고 춤추고, 영화도 보고요. 저 방은 드레스 룸이라기보다 저의 판타지 공간이에요.


재택근무를 하면서 공간의 ‘크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네, 어느 정도는요. 만약 제가 창 없는 원룸에서 재택근무를 했다면 무척 힘들었을 것 같아요. 꼼짝없이 일만 해야 할 테니까요. 저는 재택근무하면서 소소하게 쉴 수 있어서 좋았거든요. 잠시 일을 멈추고 저 산을 바라보면서 차 한잔하고, 또 일이 안 풀릴 땐 작은 방에 있는 1인 소파에 앉아 책 좀 읽다가 다시 시작했어요. 어쨌든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창과 방이 있으니까 전환이 된 거였죠.


원룸에 사는 이들은 재택근무를 하면 옆집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요. 또 집에 오래 있으니까 식비나 전기료도 무시 못 한다고 하고요.
듣고 보니까 그렇겠네요. 제가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있고, 또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기에 이 정도의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이 모든 게 없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문제에 직면했겠죠.


재밌는 조사가 있어요. 재택근무 경험자 218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딴짓하는 정도가 47.7% 늘어났대요. 하지만 재택근무가 마냥 자유로운 건 아니에요. 회사에 있으면 근무 태도도 중요한 역할을 할 테지만 재택근무를 할 땐 오롯이 ‘성과’에만 집중하게 되잖아요.
맞아요. 딴짓이 늘 수밖에 없죠. 회사에서도 틈틈이 쉬는 시간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성과에 대한 부분은 저에겐 현재진행형이에요. 지금 다니는 회사가 성과만 보는 곳이거든요. 근무시간은 사실 중요하지 않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자발적으로 일하는지 보는 거죠. 네가 성과만 낼 수 있으면 터치 안 하겠다, 이런 느낌? 그래서 재택근무가 시행되고 나서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어요. 하지만 압박은 있죠. 항상 좋은 성과를 내야 하니까요. 아마 과정과 절차를 중요시 여기는 회사에서 일하는 분들은 지금 힘든 점이 많지 않을까요?


승아 씨는 어떤 성향의 사람이에요? 요즘 바깥 활동보다 집에서 놀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을 ‘홈루덴스’, ‘홈족’이라 부르더라고요.
글쎄요, 저는 홈루덴스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아요. 내향적이면서도 외향적이기도 하거든요. 박나래 씨처럼 친구들에게 음식 대접하고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해서 매주 홈 파티를 열어요. 코로나19가 한창 심각했을 땐 그런 시간이 줄어드니까 좀 힘들긴 했어요. 그래도 아예 만나지 않았던 건 아니고 친구 한두 명만 불러서 시간을 보냈죠. 저에겐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만큼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도 중요해요.


재택근무하고 나서 집 꾸미기에 바빴다고요. 왜 인테리어에 관심이 높아진 걸까요? 오래 있다 보니 빈틈이 보여서? SNS에 예쁜 집 사진이 많이 올라와서?
저는 인테리어 앱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집이라는 공간 자체를 전시 개념으로 바꾼 곳이 아닌가 싶어요. 예전엔 패션이나 지식을 자랑했다면, 지금은 그 대상이 집으로 바뀐 거죠. 그러다 보니 자꾸 남의 집을 보게 되고, 내 집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계속 찾게 되더라고요. 저의 집에 있는 것도 거의 다 인테리어 앱에서 샀어요. 요즘 미디어에서도 집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부쩍 집 관련 프로그램이 늘어난 것 같지 않아요? 저는 예전부터 그런 프로그램을 즐겨 봤어요.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도 되게 좋아했는데, 그런 관심과 성향이 지금 와서 표출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럼 집에 대해 알아갈수록 나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던가요?
네, 맞아요. 집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파악하고 표현함으로써 친밀해진다고 해야 하나? 집이 생물체는 아니지만, 집과 나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공간에 머물면서 친해지는 거죠. 저는 이 집에 오면서 공간에 대해서도, 저에 대해서도 좀 더 긴밀하게 알게 된 것 같아요. 집에 있으면 편안해요. 편안하니까 계속 머물고 싶고, 퇴근해서도 기쁘게 돌아갈 수 있죠.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구조 오피스텔 1.5룸
면적  50.12㎡(15평)
전세 약 2억 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