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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를 넘나드는 홈 오피스

A Home Office Crosses over Time Difference

시차를 넘나드는 홈 오피스

Editor.Jayeon Lee / Photographer.Juyeon Lee Knock, Please

박주원/ 40세

톰브라운 아시아 퍼시픽 세일즈 디렉터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구조 아파트
면적  101㎡(31평)
보증금 9억 원대(매매)

 

Room History

32세 압구정 아파트(보증금 8000만 원, 월세 200만 원)

그곳엔 시계가 2개 있다. 하나는 서울의 시간을, 또 하나는 밀라노의 시간을 가리킨다. 시계는 2개뿐이지만 숨어 있는 도시의 시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뉴욕. 서울의 표준 시간에서 2를 빼고 밤낮을 바꿔 읽으면 되니 그곳엔 세 도시의 시간이 흐르는 셈이다. 저마다 다른 경도가 빼곡히 담긴 이 공간은 바로 박주원의 집이다. 국제도시를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그는 2019년까지만 해도 집에 머무른 게 365일 중 100일이 안 되었다. 바이러스 시대가 도래한 이후, 그의 삶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시차는 뒤섞였고 연락은 멈출 줄 몰랐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희한하리만치 괜찮았다. 서핑보드, 자전거, 스케이트보드, LP와 CD, 다양한 술과 커피, 영화 시청, 디자인 서적, 필름 카메라 등등 집 안 눈이 닿는 곳곳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운 것이다. 암울한 시대에 그의 집만이 유일한 안식처처럼 보였다.



‘톰 브라운’ 본사에서 아시아 퍼시픽 세일즈 디렉터를 담당하고 있어요. 생소한 직군인데,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톰 브라운 매장이 있는 아시아 11개국의 세일즈를 책임지고 있어요. 보통 매장 형태는 직영, 홀 세일, 프랜차이즈, 면세로 나뉘거든요. 저는 그중 직영을 제외한 모든 매장을 담당하고, 총 120여 개 숍에서 발생하는 매출 사항에 전반적으로 관여하고 있어요. 흔히 세일즈라고 하면 매장에서 손님을 대상으로 한 판매만 생각하는데, 프랜차이즈나 홀 세일은 기업 바이어들과 큰 단위로 거래가 이루어져요. 워낙 출장이 많은 직업이다 보니 세일즈 캠페인 시즌이나 패션 위크 시즌이 되면 뉴욕, 파리, 밀라노를 방문하고 아시아권 출장도 계속 다니고 있어요. 근래 마지막 2년은 국내에서 지낸 게 365일 중 100일이 안 된 것 같아요. 임시 거주를 하면서 계속해서 돌아다니는 직업이죠.

본래 원격 근무 형태를 띤 거네요?
어쩌면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명확히 다른 게 있다면 밀라노를 가든 파리를 가든 세일즈팀이 모두 다 같이 이동하거든요. 출장을 함께 다녀요. 그러니까 팀원들이 한자리에 같이 있다는 점에서는 원격이 아닌 셈이죠.

의식주 중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게 옷(衣)이었어요. 필수적인 소비 빼고는 긴축 재정에 돌입하는 분위기였거든요.
업계 전반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하긴 했어요. 그런데 너무 감사하게도 저희는 올해 매출이 소폭이지만 늘었어요. 이런 시기에 소폭이라면 굉장히 큰 거죠. 의외로 명품 브랜드는 올해 신장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자잘한 소비를 줄이는 대신 그걸 모아서 확실히 좋은 큰 것 하나를 사는 것 같기도 해요.

그렇다면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업무에 변화가 생기기도 했나요?
의도치 않게 국내에 장기간 정착하게 됐죠. 이렇게 한국에 오래 있는 게 12년 만에 처음이에요. 일을 시작하고 처음 마주하는 현상이거든요.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재택근무를 준비하는 기간을 보낸 것 같아요. 이전에 비해 업무 형태나 내용이 크게 바뀌진 않았으니까요. 다만 저희 세일즈 팀원들이 모두 국가별로 흩어져 있다 보니 모두 시차가 다른 거예요. 그래서 시차가 큰 국가가 세 군데 이상 되면 화상회의를 하기 어려워요. 최대한 세 국가 내로 조율하고, 아니면 가까운 곳을 끼워서 하고 있죠. 서울-상하이-뉴욕이나, 서울-상하이-밀라노 이런 식으로요. 정말 불가피하게 서울-뉴욕-밀라노가 되면 새벽이나 정말 이른 아침에 회의를 해야 해요.


아무리 온라인 화상회의가 편해도 국경의 차이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여요.
그렇죠. 보통 일반 회사는 기본적으로 출퇴근 시간이란 게 있잖아요. 그 시간을 기점으로 밤늦게 전화를 걸지 않는 암묵적 매너가 있고요. 저기, 벽에 보면 시계가 2개 있죠? 하나는 유럽 시간에 맞춘 거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 시간이에요. 저는 늘 두 시계를 같이 체크해요. 서울 기준으로 오후 4시가 되면 유럽은 이제 막 오전 9시거든요. 그럼 그때부터 메일이 쏟아져요. 미국에서도 서울 기준으로 밤에 접어들 무렵부터 연락이 엄청 오고요.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일본, 싱가포르, 태국, 호주 등 아시아권과 소통해야 해요. 결국 24시간 내내 메일이 오는 거예요. 알람이 계속 울려요. 평균적으로 하루에 적게는 80개, 많게는 120개 정도 오죠. 그러니 새벽까지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제가 일부러 끊어내지 않으면 도저히 차단할 수 없겠더라고요. 처음엔 전부 했어요. 그런데 매일 새벽 3~4시에 자니까 점점 힘들어졌어요. 이제는 저녁 8시 정도면 끊으려고 해요.

상상만으로도 벌써 힘든 느낌이에요. 이렇게 갑작스러운 집콕 생활이 당황스럽진 않았나요?
사실 저는 수혜를 본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작년엔 정말 모든 일정의 강도가 ‘강강강’이었어요. 패션 위크 끝나면 바로 아시아권 돌고, 한창 바쁘다가 며칠 쉬고 또 출장을 가는 식이었죠. 이걸 2~3년 반복하다가 올해는 출장을 못 가는 상황이 되니까 이제야 한숨 돌리는 시간을 얻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패션업계는 시즌을 타잖아요. 그래서 요즘이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여서 하루에 평균 16시간 정도 일하긴 하지만 다음 주부터는 그나마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업계의 업무 밀도가 높은 편이기도 하지만 주원 씨도 워커홀릭인 것 같아요. 이렇게 지금 일을 사랑하는 이유가 뭐예요?
이런 말 하면 재수없다고들 하는데(웃음), 저는 주변에서 이 일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하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는 그래도 좋은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거든요. 좋아하는 일이고, 회사에서 인정받고, 성취감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런 요소들이 원동력으로 작용해요. 무엇보다 패션이 단순히 옷만의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결국 문화예요. 보통 패션 브랜드를 하나씩 떠올리면 각각의 이미지가 다 다르잖아요. 그 회사를 직접 가보면 그 이미지에 따라 실내 건축도 다르고 사내 분위기도 달라요. 패션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갈래를 접하는 게 너무 즐거워요. 또 살아 있는 디자이너와 일을 한다는 건 엄청난 경험이에요. 그들의 동시대 비전이 투영된 작품을 보고 배울 기회는 정말 드물거든요.

방금 말하는데, 너무나 행복해 보였어요. 이번에는 집 이야기를 더 해볼게요. 이 공간의 레노베이션에만 9000만 원이 들었다고요?
더 저렴하게 할 수도 있었어요. 천장을 덜 노출시키거나, 원목 벽재를 나무 느낌이 나는 대체재로 쓸 수도 있었고요.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정말 많았죠. 다만 인테리어를 하다 보면 저렴한 항목이 있고, 중간 가격대는 없다가 갑자기 확 비싸져요. 저렴한 것으로 하면 가짜 나무 티가 나거나 플라스틱 재질이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걸로 선택했죠. 당시엔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저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어느 순간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거든요.(웃음)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안 했을 것 같아요.


코로나19 때문에 레노베이션을 한 건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 전부터 공사 작업을 했거든요. 그렇지만 코로나19 때문에 혜택을 본 건 맞죠. 집에 오래 있잖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을 보면 자동으로 기분이 좋아져요. 여기도 저기도 하나하나 제가 좋아하는 것투성이니까요. 그냥 이 안에서 커피만 마셔도 행복하더라고요. 팬데믹으로 집에 오랜 시간 머물면서 이것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어요.

서핑보드, 바이크, 스케이트보드 그리고 카메라까지, 집을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웠어요. 원하는 것을 꼭 해내고야 마는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해요.
우리 모두 유한한 삶을 살잖아요. 하고 싶은 걸 안 하고 살면 그런대로 잘 지내는 건 줄 알았는데 저도 모르게 그 아쉬움이 쌓이고 있더라고요. 저는 서핑을 꼭 제대로 하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묻어두고 지냈거든요. 그러다 코로나19로 우연히 기회를 얻게 됐어요. 올 3월 초에 밀라노, 파리, 두바이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스케줄이 있었어요. 그런데 파리의 확진자 증가 추이가 너무 심해진 거예요. 그래서 두바이로 갔는데 거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죠. 하지만 가장 심한 건 한국이었어요. 회사에서 한국 돌아가면 출장을 못 갈 거라고 하더라고요. 당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한국인 출입을 막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죠. 그럼 내가 내 돈 들여서 발리로 갈 테니 비행기표만 예약해달라고요. 발리만이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청정 지역이어서 선택한 거죠. 근데 발리가 서핑으로 유명한 곳이잖아요. 우연찮게 서핑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아침 6시부터 9시까지 내리 서핑을 하다가 코워킹 플레이스에 가서 일을 하고 퇴근하는 삶을 살았어요. 그때 느꼈죠. 이게 좋을 줄은 알았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좋을 줄은 몰랐다는 걸요.

그때 경험이 하고 싶은 것 쪽으로 더 직진하게 만들었군요.
원래 좋아하는 것에 적극적인 편이긴 하지만, 갈증 해소를 경험하고 나니까 다른 즐거움도 망설임 없이 하게 되더라고요. 집도 마찬가지예요. 누구나 어릴 적부터 ‘집이 있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하는 상상을 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현실로 구현해보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행복해요. 훨씬!

그렇다면 좋아하는 걸 집에 두는 경험이 사람들에게 왜 필요할까요?
어떤 것이든 좋아하는 걸 집에 가득 채울 수는 없어요. 책을 좋아한다고 집에 책만 한가득 둘 수는 없잖아요. 집 자체는 빈 공간과 비어 있지 않은 공간의 조화가 정말 중요해요. 그렇다면 이미 거주자에게 주어진 공간 자체가 많지 않죠. 그 얼마 없는 공간을 이도 저도 아닌 걸로 채우면서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것 때문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못 들어오잖아요. 하나를 놓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면 공간을 조율하고 기획하는 힘이 생겨요. 그러면 점점 그 공간 전체의 합을 잘 보는 눈을 갖게 되더라고요.

     

침실보다 옷 방이 훨씬 커요. 여느 쇼룸이나 매장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이 집에서 가장 큰 방이에요. 저한테 일단 옷이 너무 많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존재이기도 해서 좋은 공간을 내줄 수밖에 없었어요. 문제는 옷이 많으니 어디에 어떤 게 있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비슷한 걸 사는 경우가 정말 많고, 사고 보면 이미 갖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어요. 그래서 파노라마처럼 전부 한눈에 보이도록 배치하고 싶었죠. 3단으로 천장까지 크고 널찍하게 구획해 긴바지, 면바지, 긴팔 셔츠, 반팔 셔츠 등 카테고리별로 나열했어요.

테라스도 인상적이에요. 원래 거실을 분리해서 테라스를 만들었다고요? 보통 세입자라면 하기 힘든 작업인데요.
매매였기에 가능했죠. 원래부터 실내도 실외도 아닌 공간을 꼭 갖고 싶었어요. 바깥의 자연이 들어오면서 실내가 연결되는 공간요. 그래서 처음엔 식물원처럼 꾸미려 했죠. 작은 온실인 것처럼요. 그런데 유럽 출장을 다닐 때, 야외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던 좋은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그런 공간으로 변경했죠.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기 좋아요.

사실 이 정도 규모의 비용으로 집에 좋아하는 것을 녹일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아요. 작은 평수에서 오랜 실내 생활에 지쳐가는 이들을 위해 조언을 좀 해준다면요?
제가 20대 때 잠시 동안 월세 60만 원 정도 되는 오피스텔에서 살았어요. 7평 정도의 크기였고요. 그때 경험에 비추어 말하고 싶어요. 그땐 그렇게 지내던 친구가 지금은 나이를 먹어서 이 집에 사는 거니까요. 저는 그때에도 옷이 많았어요. 대신 지금처럼 요리엔 관심이 없었고요. 한정된 공간이잖아요. 첫 번째, 포기할 건 과감히 포기하세요. 저는 그때 주방을 포기했어요. 붙박이장 하나밖에 없으니까 옷이 남아돌잖아요. 주방에 행어를 설치해 아예 옷 방으로 썼어요. 욕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최대한의 공간 기획이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효율적인 공간을 생각해보는 거예요. 분명 숨어 있는 공간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TV를 바닥에 두었는데 선반으로 올리니 그만큼의 죽어 있던 공간이 나온다든지, 창문 틈에 책을 놓았더니 책장이 필요 없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만약 그런 걸 알아차리는 눈의 근육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이나 영상 콘텐츠를 자주 접하면서 안목을 키우는 게 중요해요. ‘Ideas for small house’ 같은 키워드로 찾아보면 관련 자료가 정말 많거든요. 관련 레퍼런스를 자주 보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그리고 생활 소품 쇼핑몰에 들어가서 제품을 쭉 보면 ‘어, 이거 우리 집에도 접목할 수 있겠다!’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모든 걸 들여놓을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해요. 이 세 가지를 적용해보면 좁은 공간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에 둘 수 있을 거예요.

   




Conditions

지역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구조 아파트
면적  101㎡(31평)
보증금 9억 원대(매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