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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좋은 정원을 가질 수 있나요?

A Gardner’s wisdom

우리도 좋은 정원을 가질 수 있나요?

Editor.Chanyong Park / Photographer.Juyeon Lee Article / reportage

정영선은 한국 조경계의 거장 중 한 명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1호 졸업생, 한국 최초의 여성 기술사다. 예술의전당, 86아시안게임 기념공원, 인천국제공항, 여의도 샛강공원, 선유도공원 등 전국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대형 조경 작업을 진행했다. 이제 여든이 넘은 조경의 대가는 그럼에도 아직 한국의 흔한 식물을 이야기한다. 작은 화분의 보잘것없는 식물이라도 정성껏 보살필 때 식물이 약속을 지킨다고 말한다. 초여름 남산을 바라보며 정영선과 나눈 이야기를 옮긴다.





기분 좋게 먼 산을 바라보기


정원을 유지하려면 공이 많이 들죠?
관심만 있으면 살게 되어 있어요. 흙 잘 맞춰놓고, 물만 있으면 돼요. (식물은) 물이 많이 필요한 종류하고 물이 덜 필요한 종류가 있는데, 그런대로 그냥 하면 돼요.

그럼 처음부터 수종 따라 섞어두기도 하나요? 물 먹는 걸 계산해서요?
이상한 질문을 하네.(웃음) 축축한 땅에는 축축한 데서 잘 자라는 식물을 심는 게 원칙이고, 땅이 바짝 마르고 햇빛 쨍쨍한 데는 건조에 잘 견디는 식물을 넣어야 되고. 그게 나무든 풀이든 꽃이든 다 구별해서 해야 돼요. 그것까지 이야기하면 아무도 꽃 심을 생각을 안 하니 그런 이야기는 오늘 안 할 거예요. (자리에 앉으며) 여기가 내 비밀 장소예요. 여기서 남산타워하고 저 남산 뒤의 봉우리를 잘 보게 하려고 그랬죠.

앉아 계신 곳에서는 식물이 옆집 풍경은 가려주고 남산만 보이네요. 이 앞에 있는 나무 높이도 맞춘 거예요?
그럼요. 다 맞춰놓았죠. 이 나무가 더 높이 자라지는 않고 옆으로 커지게 조경할 거예요. 내년에는 요 위를 좀 자르고 옆으로 길러서 (시야 속) 펜스가 안 보이게 하고. 옛날 정자에 앉아 제일 기분 좋게 먼 산을 바라보게 되는 거예요.







지금 이곳의 정원


이번 전시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요?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조경이라는 큰 영역의 한 분야인 정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전시장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조경이라는 영역을 간단하게 보여주려 했죠. 이 옥상을 남산과 함께 즐기는 옛 선비의 정자 같은 느낌이 드는 공간으로 만들려 했어요. 누구든 올라와 쉬면서 ‘나도 집에 가서 요런 것 하나 만들어봤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고 싶었죠. 그래서 우리나라에 흔한 꽃과 나무를 넣었어요. 누가 봐도 ‘저 정도는 살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도록 말이에요. 집에 가서 만들어보라는 이야기예요.

지금 이 정원에 있는 게 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풀인가요?
그럼요. 자목련, 물철쭉, 작약, 90%는 산에도 있는 우리나라 야생 풀이에요. 흔한 풀도 정원에 잘 쓸 수 있어요. 계절, 아침저녁, 날씨, 어느 때나 자기 얼굴을 가지고 변화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지요. 나는 최소한의 터치를 하고, 시간과 자연이 얘들을 어떻게 끌고 가는지에 달렸어요. 관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돌봐주느냐, 거기에 맡기는 거지.

대표작 중 하나인 선유도공원 조경이 생각나는 말씀입니다.
공원에 원래 있던 건물을 최대한 살리자고, 여기 있던 사람들이 키우던 나무도 그대로 살리자고 했어요. “겸재 정선의 그림에 나온 선유도는 우리가 못 구한다. 이 시대에 맞게 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그게 당선됐죠. 그 공간은 내가 열정을 기울였기 때문에 너무 좋아요. 얼마 전 사람들이 그 공간에 온 걸 봤어요. 사람들이 공원을 이용하는 방법이 돗자리 펴고 밥 먹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선유도공원은 그렇지 않아요. 애들은 생태를 공부하고, 한강 물이 순환되는 걸 봐요. 이곳은 과학적인 곳, 생태 공부를 하고 명상하는 곳, 이런 곳이니 특성을 살려달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요즘에는 빈 공간에 기도 모임을 하는 식으로 공원을 쓰는 시민들이 있다고 해요. 그런 쪽에 공원들이 발을 맞춰주면 좋겠죠.


아산병원 조경을 할 때의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병원은 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녀보면 휠체어를 끌 수 없는 병원 정원이 있어요. 아니면 전부 주차장이죠. 그래서 이야기했어요. “환자도 와서 울어야 되고, 의사 선생님도 신경질 나서 오면 한숨 좀 쉬어야 하고, 간호사도 환자 가족도 쉴 장소가 있어야 해요. 아픈 환자 앞에서 못 우는데 근처 어디 숨어서 울 자리가 없잖아요. 그런 정원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잎새>를 보면 사람이 아픈데, 잎 하나 달린 것 보고 희망을 가지잖아요. 정원을 보며 아픈 사람이 희망을 갖게 하면 좋겠죠.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 않던 시기에 여성 전문 직업인으로도 유명합니다. 고충이 많으셨죠?
지방 가서 잠자리 불편한 정도지 나머지는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첫 단추가 잘 들어왔어요. 한전 사옥, 엑스포 등. 그런 걸 대기업에서 전폭적으로 지지해줬어요. 이런 행운이 계속 있으니까. 나는 시건방지지 않고, 지나칠 정도로 일을 하고, 여자라고 빼지 않았어요. 바쁠 때는 당시 염보현 서울시장님한테 보고할 게 밀려서 석촌호수 공원, 아시아 선수촌에 대한 보고를 새벽 2시에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젊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한국의 전통 정원은 어디일까요?
어느 정원이나 꼼꼼하게 들여다볼 필요는 있어요. 소쇄원도 있고 희원 같은 곳도 있고. 대를 이어 있는 곳들을 보는 것도 중요하죠.

한국 정원을 공부할 때 참고로 삼은 책이나 자료는 무엇인가요?
옛날에는 선비들이 수도 없이 많은 정자를 지었잖아요? 그 정자에 기록이 있어요. “나는 여기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어떤 나무를 보고 물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곳의 어떤 경관에 어떤 덕목을 취했다. 나는 여기서 어떤 마음으로 수양하겠다” 이런 식으로. 그런 글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자연관이나 경치에 대한 설명을 배웠어요. 대학원 다닐 때 정자를 찾아다니면서 기록, 기문을 읽었죠. 한자로 되어 있으니까 번역도 하고. 그렇게 스스로 공부했어요. 그런 걸 보면서 나 나름대로 해석하며 한국적으로 이렇게 만들면 되겠다, 하고 곳곳에 적용했어요.

그래서인지 이 정원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머물다 가네요.
너무 귀엽고 너무 좋아요. 그래도 집에 가면 화분이라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겠죠? 그럼 됐지.








나의 젊은 날


선생님은 어릴 때 어떠셨어요?
내가 태어나고 할아버지가 사신 곳은 대구에서 가까운 경산이라는 곳이었어요. 할아버지는 얕고 도톰한 산꼭대기에 집을 지었어요. 그 주변을 빙 돌아가며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흐르고, 논밭이 펼쳐진 그런 공간에. 사과밭 속에 살아서 사과꽃이 온 마당에 하얗게 깔려 있었어요. 그 산에 고인돌 스타일의 큰 바위가 여기저기 일곱 개 있었어요. 그래서 이름을 칠암과수원이라고 지었죠. 굉장히 오래되고 이끼도 끼고 그냥 청색으로 빛나기도 했던 그 바위 밑에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백합 한 송이를 심어놓곤 하셨어요. 길에서 우리 집까지 가려면 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어요. 계단 맨 위에 무궁화가 한 그루 있고, 바위가 있고, 백합이 심어져 있고, 장독대가 있고, 우물이 있었어요. 그 풍경이 어릴 때 나한테는 너무너무 강렬한 체험이었죠. 어떤 의미에서 나한테는 영감의 원천이지요. 아버지는 교직에 계셔서 청소년기에는 대구의 학교 사택에 살았어요. 그 사택은 선교사들이 만든 곳이었어요. 아버지가 계신 남자 고등학교는 굉장히 힘찬 미국식 건축에 나무도 우리나라 게 아닌 것 같은 히말라야 시더우드처럼 꼿꼿한 걸 심어놨어요. 반면 내가 다니던 학교나 동네는 생전 처음 보는 꽃의 향연이었어요. 아이리스, 장미, 듣도 보도 못한 꽃들이 쫙 있는데, 미나리아재비 같은 걸 보다가 완전히 다른 공간을 경험한 거죠. 전통적인 공간에서 자라고, 감수성 높을 때는 미국식 공간에서 살았으니까요. 그런 게 은연중 많은 공부가 된 것 같아요.

아름다운 풍경이네요.
아버지께서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우리말로 번역된 당나라 시집을 주셨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안다고 한 개씩 외우라고 하셨죠. 뜻도 모르고 그 시를 외우며 ‘도연명의 시가 이런 문구구나’ 같은 걸 느끼곤 했어요. 문학적 소질이 있으니까 주셨겠지. 내가 장학생으로 하도 백일장 같은 데 당선되어 무조건 경북대학교 영문과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어요. 돈 10원도 없는 집에서 동생들 총총 있는데, 남자처럼 문과 대학 간다며 엄마가 집에 가둬놓고 그랬어요. 아버지가 그때 낸 해결책이 박목월 선생님에게 편지를 쓴 거였어요. 박목월 선생님은 아버지와 계성학교 친구분인데, 내가 쓴 글을 몇 편 보시고 희망이 있다면서 우리 학교로 시집을 보내주곤 하셨어요. 박목월 선생님이 “영문과에 가서 문과 공부를 하면 테크닉은 배울 수 있어도 감성을 기르기에는 안 좋을 것 같다. 감성을 풍부하게 하려면 농대가 낫다”고 하셨죠. 대신 지켜야 할 악속이 있어서 나중에 나에게도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내셨어요. 농대라고 술 마시지 말라는, 그런 약속을. 그래서 아버지가 허락하셨고, 나는 아직도 술을 마시지 않아요. 그 약속을 지키는 거예요.

선생님 인터뷰를 준비하며 기사를 좀 찾아봤는데,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박목월 선생님은 내가 잡지사 기자가 되는 것도 처음에는 반대하셨어요. “잡지사 여기자들 세고 그런데‧‧‧ 그래도 잘 적응해봐라” 이러시면서 가끔 나를 찾아와 아디스 다방 같은 곳에서 커피를 사주곤 하셨어요. 내가 잡지사 기자 되고, 조경의 길로 가고, 선생님도 편찮으셔서 소원해졌지만, 내 인생이 이렇게 바른길을 가는 데 박목월 선생님이 참 큰 역할을 해주셨어요.








젊은이들에게

선생님 젊은 시절엔 고민 같은 거 없었나요?
젊은 시절에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어떤 게 고민이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그걸 궁금해하더라고요.
많은 시련이 있었어요. 건강 문제, 집안 문제, 결혼 문제, 여러 문제가 많았지. 여유가 있었으면 나도 외국 가서 조경 공부를 하고 싶은데, 그것도 못 하고, 동생들 공부도 해야 하고, 기타 등등. 필요한 것은 참 많기 마련이잖아요? 그렇게 그렇게 지나가는 거지 뭐.

젊은 친구들이 자기가 기댈 어른이 없다고들 해요. 그래서 여쭤봤습니다.
조경 공부를 하고서는 식물이 내 위안처가 되었죠. 나무라든가, 숲이라든가. 대학 다닐 때 새벽에 기도 모임도 했고. 숲이 나한테 주는 위로가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위로는) 자기 스스로 찾아야지. 어른을 찾아가서 한 말씀 듣는다? 이거는 아닌 것 같아. 저 사람 인생 평탄하다 싶어 보여도 힘든 고비가 누군들 없겠어요? 나도 꿈 접은 거 많아요. 문학소녀 된다는 꿈 접었지, 유학 가고 싶은 거 못 갔지, 결혼 제대로 안 되었지, 아팠지, 신랑 일찍 가버렸지. 다들 그래요. 내색 안 하고 사는 게 중요한 거죠. 자기 시련에 어디에서 위로를 얻느냐의 문제일 뿐이에요. 아마 나는 이런 식물이 위로를 줬겠죠.

식물의 어떤 점요?
강인한 생명력, 어김없이 찾아와주는 것, 약속 지키는 것. 대신 내가 잘 돌봐야 식물이 그 약속을 지켜주죠. 나는 얘한테 물도 안 주고, 쓰다듬어주지도 않고, 겨울에 춥다고 다독거려주지도 않고, 그건 아니죠. 식물과의 관계는 피차 약속이에요.






젊은이의 녹지


요즘 젊은이들이 자신만의 녹지를 갖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정원이라고 집채만큼 클 필요는 없어요. 지금 꽃 시장에 나가면 작은 걸 많이 팔아요. 흙도 다 팔고요. 흙에 꽃을 사서 심으면 마당, 테라스, 어디든 밖에 내놓을 수 있어요. 그런 것도 할 여력이 없고 집에 방밖에 없을 때는 실내에서 강한 식물이 있죠. 잎이 두꺼운 관엽식물. 계절 따라 막 변하는 식물은 햇빛이 부족한 실내에서는 잘 자라지 않아요. 자기는 아침 먹고 커피 마시고 점심 먹고 간식 먹고 저녁 먹고 술 마시면서 식물은 잊고 내버려둔다면, 그러면 죽고 말죠. 내가 밥 먹을 때, 내가 차 마실 때 “너도 마시자” 하면서 같이 물 주면 물 주는 것도 안 잊어버려요. 바빠서 밥을 한 끼밖에 안 먹는다면, 식물도 그래요. 제대로만 주면 이틀에 한 번 물 줘도 안 죽어요. 그런 식으로 나와 같이 생활을 해야죠. 내 식구다 하고 쓰다듬고 다듬는 게 중요해요.

‘내 식구다’ 하고 쓰다듬고 다듬는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실내에서 난을 키우면 잎에 먼지가 끼어서 난이 호흡을 못 해요. 옛날에 우리 아버지는 그래서 그 비싼 청주나 소주를 거즈에 묻혀서 잎을 닦아줬어요. 사람도 못 먹어서 배가 고픈데. 그런 정성은 아니어도 내가 커피 마실 때 물 주면 돼요. 화분이 방 안에 수백 개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못 한다고. 아주 쉬운 식물부터 해보면 돼요. 대신 실내에 뭘 심을지 공부를 해야 해요. 처음부터 고급 화분에 고급 식물을 심었다가 잘 안 돼서 돈을 날리면 말이 안 되죠. 쉽게 시작하세요. 미세먼지가 고통스러우면 공기 정화 식물을 매달고. 출장이나 야근이나 여행이 잦으면 물을 자주 안 줘도 되는 용설란이나 선인장이 좋겠죠. 내 생활 패턴과 맞추면 돼요.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하나씩 애정을 가지고. “아이고 내 새끼!” 이런 식으로요. 화분이 너무 무겁고 크면 힘들잖아요. 그럴 때는 바퀴 달린 물받이를 쓰면 돼요. 길은 얼마든지 있어요.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나는 것을 느끼나요?
늘어날 수밖에 없죠. 젊은이들은 밖으로 나가는데, 다 못 나가잖아요. 그게 방콕 스타일이 아닌 사람한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일 거예요. 시간을 견디는 차선책이 있을 텐데, 식물도 한 요소죠. 누구든지 내 옆에 식물이 있으면 나름 좋아요. 없는 것보단 백배 낫죠.

아직도 식물을 보면 새로운 기분이 들 때가 있나요?
매일 보는 풀이라도 다른 느낌을 받아요. 어느 날은 귀엽고, 어느 날은 “왜 꼬라지가 이래?” 싶어서 잘라주죠. 또 어느 날은 “이제 들어갈 때 되었지? 내년에 보자”고도 하고요. 일하면서 중얼중얼 얘들하고 이야기해요. 매일 새로워요.

같은 식물이라도 애정을 갖고 보면 매일 새로운 모양이에요.
꼭 식물원에 가서 화려한 것을 봐야만 “꽃 봤다” 이런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바예요. 어딘가에서는 이름 모를 한 포기 풀이고 고사리지만 제대로 쓰이면 좋죠. 내가 애정을 가지면 좋은 거예요.

식물과 평생 함께하며 무엇을 배웠나요?
변덕이 없다는 것. 사람은 너 좋다, 너 나쁘다 할 때가 있죠. 식물은 조금만 갖춰주면 늘 그렇게 그 자리에 와줘요. 얼마나 고마운가요. 예쁘고 좋은 걸 넘어 식물은 우리에게 중요한 걸 많이 줍니다. 그러니 풀이라고, 이름 모를 나무라고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겠죠. 식물은 가꿀수록 좋아져요. 산림도 가꾸고, 정원도 가꾸고, 집에서 이런 식물도 가꿔야 해요.

결국 식물을 가꾸고 보살피는 마음이 중요한 거군요.
서로 보살피는 거죠. 내가 식물을 보살피면 식물은 말없이 내 마음에 위로를 주고 평안을 주니까, 나는 또 그 힘을 얻어요. 고마움을 가지고 식물을 대하면 식물도 나를 아무렇게나 대하지 않을 거예요. 대신 ‘예쁜 꽃이 귀하고, 비싼 장미가 좋고, 풀 따위는 별로고’ 이렇게 생각하면 잘 안 될 거고요.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네요. 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