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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천장을 노려본다

Why I Look at the Ceiling

나는 가끔 천장을 노려본다

Writer. Yunsun Park / Illustrator. Subin Yang Article / essay

“어디, 좋은 계획이 있어요?”

조금 긴장된 목소리로 그가 묻는다. 나는 생각한다. 당신에게 대답해줄 수 있는 좋은 계획이 나도 제발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뇨, 여기 좀 더 있으려고요.”

맥없는 내 대답에 그의 목소리엔 반대로 화색이 돈다.

“아, 아이고~ 다행이네. 안 그래도 1층 학생이 유학을 가야 한다며 급히 보증금을 빼달라고 해서 거길 먼저 해줬거든. 아니 당장 나가야 한다는데 별수가 있어야지.”

“네에….”

“그러면 월세를 조금 내는 게 어떻겠어요?”

“…네?”

잠시 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집주인은 내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월세를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뭔가, 뭔가가 이상하지 않은가? 나만 이상한가? 기온이 40℃를 오르락내리락하던 지난 8월 말, 전세를 연장할 때 벌어진 일이다.

“아유 아저씨, 저만한 세입자도 없어요. 없는 듯 조용하지, 또 제가 집을 얼마나 깨끗하게 쓰는데요.”

아저씨는 자기 집을 깨끗이 쓴다는 내 소박한 항변에 도리어 화를 낸다.

“아니, 깨끗하게 쓰는 건 당연하지! 그게 뭐 자랑이라고!”

안 되겠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굽히고 사는 것이 미덕이라고 믿어온 세입자 인생 32년, 나는 드물게 집주인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저씨, 지금 장판이 찢어지고 화장실 천장에선 물이 새는 이 집에 월세를 내라는 말이에요? 보증금도 이미 많이 받으셨잖아요. 솔직히 저 이 집에 그 보증금도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해요.”

예상치 못한 반격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그가 머쓱해져서 이런다.

“아니, 요새 다들 그렇게 받는다길래. 허허허허.”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몇 가지 있다. 내겐 이사가 그렇다. 잠시 나의 ‘이사력’을 소개하자면, 나는 또래보다 조금 자주 집을 옮긴 편이다. 태어나 열다섯 번, 대략 2년에 한 번꼴로 짐을 싸고 또 풀었다. 그 길고도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혼자 이고 지고 사는 것이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아 글을 썼고, 그러다가 책까지 냈다. 이쯤이면 조금은, 손톱만큼은 더 담담해질 때도 되었다. 하지만 지난여름 열여섯 번째 이사가 돌아왔을 때, 나는 다시금 불안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신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도저히 무리야. 무엇보다 이 여름이 너무도 혹독하잖아. 결국 나는 관리비 조로 소액의 월세를 내기로 집주인과 합의했다. 2년간의 평화를 구매한 대가라고 생각하자. 역대급이라는 무더위에 땀 흘리며 집과 집 사이를 헤매는 대신이라고. 사실 그렇게 받아들이면 정말 하나도 아깝지 않은 소액이었다. 장판이 찢겨도,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새도 나는 내 작은 집의 고요함과 안온함을 사랑하니까. 월세를 주고 사온 그 평온함에 안긴 채 나는 이렇게 글도 써 내려간다.

하지만 가끔 방에 오도카니 앉아 있노라면 예고도 없이 그의 머쓱한 웃음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다들 받는다길래. 허허허허.” 그 웃음소리는 아이보리색 페인트를 정성스럽게 바른 나의 싱크대에, 연주되지 않는 피아노가 기대어 있는 밋밋한 흰 벽에, 드림캐처를 걸어둔 작은 침대에 튕겨 왕왕 울려댄다. 그러면 내 집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그의 소유라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해진다.

나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노려본다. 위층엔 돌려줄 보증금은 없으나 월세를 원한다 했던 집주인이 살고 있다.


가장 개인적 공간을 나와서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 이른바 주거 불안이다. 세입자들은 만성적으로 이런 불안감에 노출돼 있어 그런 게 있었는지조차 잊어간다.
그러나 나는 그 불안이 현실화되었을 때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잘 안다. 내가 살던 원룸 건물이 재건축되면서,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예의가 바르던 그 집주인은 집을 비워달라는 얘기를 하면서도 무척이나 점잖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세입자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그때 분노보다도 나를 압도한 것은 무력감이었다. 


다음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뻔한 것이다. 일을 하면서 짬을 내 집을 보러 다니고 번번이 실망하고, 부동산 중개인은 방법이 없다 하고, 이사 날은 시시각각 다가온다.

사나운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때면 집 생각은 밀쳐두고 머릿속으로 이런 허무맹랑한 스토리를 상상하며 잠시나마 현실을 잊어보기도 했다. 신비한 능력과 마법의 우산을 가진 한 영국 여자가 어느 날 바람을 타고 나타나 서울에 작은 부동산 중개소를 운영하기 시작한다. 집이 없어 슬픈 중생들이 부동산 문을 두드리면, 그녀는 비가 오지 않는데도 우산을 활짝 펼치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의뢰인에게 딱 맞는 집을 구해준다. 그 부동산 이름은 ‘메리 부동산’.
조금 토속적인 버전도 생각해봤다. 배우 공유와 쌍둥이처럼 똑 닮은 미남으로 소문난 어느 부동산 중개인에 관한 것이다. 그는 집주인의 사주팔자는 물론 풍수와 지리를 철저히 따져서 의뢰인과 궁합이 딱 맞는 집을 귀신같이 찾아주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의 인도에 따라 이사를 한 사람은 누구나 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행복 충전 스토리다. 이 부동산의 이름은 다소 길다. ‘빠르고 정확한 부동산의 神, 도깨비 공인중개사무소’.


어른이 다 된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 사람은 이제 없다. 그래도 그 비슷한 것을 묻는 이가 있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개는 웃어넘기지만, 가끔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다. 왜 벌써부터 그런 고민을 하느냐고, 집도 소유가 아닌 공유하는 시대가 코앞이라며 ‘디지털 노매드’가 어쩌고저쩌고한다. 그러면 나는 갖고 싶은 건 그냥 갖고 싶은 것이라고 눙치고 만다.
실은 나 역시 막상 집을 소유하더라도 뭐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집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아니라는 사실쯤이야 나도 안다. 그래도 나는 이 글을 통해 나 자신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더 명확하게 내 심정을 설명해보고 싶다.

내 집을 향한 이 열망은 따지고 보면 어엿한 집이 갖고 싶어서라기보다 ‘더 이상 이사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라고. 정확히 말하면 이사를 하면서 겪는 집주인과 부동산 중개인, 은행과의 지리멸렬한 푸닥거리를 그만 두고 싶어서라고. 나는 이제 그만 상처받고 싶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도 석연치 않아 조금 더 생각에 잠겨 본다. 갖고 싶은 것은 실상 집이 아닐지 모른다.


그저 아무리 작고 낡았더라도 나 아닌 그 누구도 옮기거나 침범할 수 없는 어떤 지점, 어쩌면 그런 것에 더 가까울지도. 아직 청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그 ‘점’ 하나를 이다지 갈망하는 건 사실 너무도 당연하다.



그들에겐 자신을 포함한 세상 전부가 확신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니까. 그러니까 조금 불안해도 괜찮다고,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쩔 수 없다고 입으로 소리 내 혼잣말을 한다. 가끔 천장을 노려보는 것, 실없는 이야기를 꾸며대는 것, 말이 통하지 않는 집주인에게 사소하게 항의하고 연말이면 그래도 작은 트리에 불을 밝히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렇게 글로 써 내리는 것. 이런 이상한 방식으로 나는 내 나름의 지점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걸까. 다들 이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득 그런 기분이 든다.

박윤선

기사 그리고 수필. 두 개의 상반된 글을 씁니다. 이해하기 위하여, 이해 받기 위하여. 수필집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를 썼습니다. 서울경제신문에서 7년째 기자로 살고 있습니다.